“이스뚜디(감사합니다)”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진심어린 감사인사다. 구호물품을 싣고 달리는 차량, 낯선 피부색의 얼굴들, 생전 처음 먹어볼 라면을 보고도 그들은 “이스뚜디”를 연발했다. 그 순간 얼굴 표정들도 ‘이스뚜디’가 됐다.

4일 낮 한국 구호봉사단의 트럭 2대가 스리랑카 남부 관광지인 갈(Galle)에 다다랐다. 순식간에 이재민 수천 명이 트럭이 선 카치와타 사원에 박수를 치며 몰려들었다. 식빵이며 물, 라면 상자를 내밀면 수십개의 손들이 아우성치며 받아갔다. 다들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수많은 검은 얼굴들 속에서 하얀 이만 빛났다. 이른 새벽 콜롬보 공항에 도착해 한숨도 돌리지 못하고 5시간을 내달려온 봉사단원들도 함께 웃었다. 트럭 2대의 짐칸은 1시간도 안 돼 텅 비고 말았다.

이날 스리랑카에 도착한 봉사단은 우리이웃 네트워크 참여단체인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목사)과 한민족복지재단(회장 김형석) 요원 5명. 지난달 29일 처음 파견된 5명을 포함해 모두 19명이 갈 지역에서 구호 봉사를 하고 있다. 구호에 드는 비용은 하루 1000만원 가량이다. 이들 외에도 YMCA 그린닥터스를 비롯한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스리랑카 이재민들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 남부 도시 갈에서 4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구호물자를 받고 있는 이재민 가족이 활짝 웃고 있다. /갈(스리랑카)=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a href=http://dicaevent.chosun.com/bbs/view.php?id=photo_kisa&no=1757>▶ "동남아 대 지진.해일...그리고 구조의 손길 [화보]" <

한국인들의 봉사에 감동받은 현지 자원봉사자도 눈에 띄었다. 기트(19·고2)양은 “한국인들이 밥도 못 먹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진해일 이후 스리랑카 남부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참사 9일째지만 스리랑카 남부지역은 복구에 거의 진전이 없다. 수도인 콜롬보에서 중장비가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와루니 델파고다그(18)양은 “85명이 화장실 2개와 목욕탕 1개를 함께 쓴다”면서 “아직도 ‘쏴아’ 하는 파도소리와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콜롬보에서 갈 지역으로 가는 길에 보니 폐허가 된 도로변 주택가 흙바닥에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시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문틀만 남은 집앞에서 잠자는 사람들이었다. 검은 폐허 속에서도 흰 깃발들은 선명했다.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조기(弔旗)다. 불과 열흘 전 이곳은 야자수 아래 칵테일을 마시던 세계적 휴양지였다.

스리랑카 남부는 이번 재앙으로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달 초만 해도 폐허에서 시신들이 발에 밟힐 정도였다. 아직도 바닷가엔 파도에 휩쓸린 아이들이 밀려오길 기다리는 부모들이 서성이고 있다.

바닷물이 육지를 덮친 뒤엔 하늘에서 물을 쏟아부었다. 하루 최대 330㎜에 달하는 열대성 폭우였다. 치안상태도 불안정해 강도와 강간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곳에 도착한 박현덕 목사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상황”이라면서 “우리의 작은 봉사가 이들에겐 엄청난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스리랑카)=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