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허슬’을 통해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며 주연 감독 등 1인 4역을 해낸 주성치. 물론 그의 지향의 끝은‘쿵푸’다.

■골방의 왕자, 만인의 스타가 되다

이소룡, 양소룡, 성룡에 다 있는 '용(龍)' 한마리 없고, 무술대회 출신 이연걸에 비해 내공이 몇 갑자 떨어지고, 주윤발의 미소도 없으니, 그는 처음부터 홍콩 영화계에서 '지존'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무협영화인이 되고 싶었으나 '희극지왕'으로 불리는 데 만족해야 했고, 무협 팬보다는 'B급 영화' 매니아의 한정적 지지를 받는 것이 전부였던 주성치.

그러나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골짜기가 메워져 언덕이 되는 것이 인생. 당분간 가장 활발한 활동으로 홍콩 상업 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배우는 주성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검법의 최고 경지가 신도합일(身刀合一·사람이 칼이 되고 칼이 사람이 되는 경지)이라면, 희극과 무협의 하나되는 경지, 즉 '희무합일'(喜武合一)에 이른 '쿵푸허슬'이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성치 영화와 그리고 무협의 결합

유치함으로 끝을 보면 예술이 된다! 이런 가설 하나를 세운 '소림축구'의 성공을 목격한 것은 한국 관객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미국 6개 극장에서 개봉했을 뿐이지만, 컬럼비아 영화사는 이 영화의 가능성을 보고, '쿵푸허슬'에 2400만달러를 투자했다. 20일 미국 선댄스 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다. '와호장룡' '영웅' 등 그간 아트 색채를 가미한 중국 정통 무협에 열광하기 시작한 관객들이 코믹과 무협의 퓨전 영화를 선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네가 뭘 보고 웃는지 안다

1940년대 상하이. 소심한 '뻥쟁이'인 부랑자 싱(주성치)은 희대의 건달인 도끼파를 빙자해 돼지촌에 돈 뜯으러 갔다가 낭패를 본다. 하층민이 모여 사는 돼지촌은 알고보니 고수들의 집합소. 이 광경을 본 도끼파는 돼지촌 고수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또다른 고수를 파견해 돼지촌은 위기에 휩싸인다.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던 평범한 남자가 중상을 입으면서 오히려 기혈이 뚫려 진정한 고수로 거듭난다.

'쿵푸 허슬’의 도인들. 오른쪽은 '본드걸'로도 활약한 홍콩여배우 원추.

‘쿵푸허슬’은 무협의 이런 일반 영웅담을 그대로 따르는 한편,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과장된 연출로 무협의 매력을 배가한다. 정통무협에서 보여주었던 각종 기예를 한목에 아우르지만, 결코 진지하지 않다. 쿵푸나 중국 무협이 갖는 ‘과장성’을 아예 웃음의 코드로 뒤바꾼 것이 이 영화의 매력 원천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이 여기서는 한 번씩 다 꼬여 나온다. 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음공(音功) '사자후'는 포악한 여주인의 잔소리가 승화한 것이라는 설정, 소심한 남편의 무술은 동작이 유들유들 부드러운 '영춘권', 게이 재단사의 재주는 강약 조절의 경지에 이른 '홀가철선권', 만두피의 달인은 봉술 '오랑팔괘곤'을 구사한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얻는 '발견의 기쁨'이다.

'도성' '신정무문' '홍콩 레옹' '서유기' '식신' 등 패러디와 화장실 유머, 기괴한 조연으로 매력이 넘쳤던 주성치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 영화는 '매니아'를 열광케 할 에피소드나 캐릭터의 매력은 덜하다.

그러나 ‘소림축구’로 비로소 발화한 ‘코믹 무협의 국제적 언어화’는 이번 영화에서 더 절정에 다가섰다. 주성치의 개인기는 줄었으나, 코미디 영화로서의 기둥 줄거리는 더욱 탄탄해졌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한 화면과 대단한 스펙터클을 보면 그의 영화는 필경 엔터테인먼트로서 몇 걸음 진보했다. 전작들이 골방에서 연탄가스 맡으면서 해먹는 ‘달고나’였다면, ‘쿵푸허슬’은 이제 설탕과 향신료의 비율을 공식화하고 포장도 예쁘게 해낸 캔디가 됐다. 달다. 또 먹고 싶다. 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