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이씨

자료 부족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우리 겨레 고유의 ‘순장(巡將)바둑’ 기보가 대거 발굴돼 학계에 큰 반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바둑 사료(史料) 연구가 안영이(71)씨는 일제 시대 일간지에 게재됐던 순장바둑 기보(棋譜) 39개를 새로 발굴, 최근 공개했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순장 기보는 3, 4국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새로 발굴된 순장 기보 39국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26년 중외일보에 실렸던 도은각·김형권의 '제1회 명가기전 신국'. 지금까지 최고(最古) 순장 기보로 전해져 온 윤경문·손득준전(1938년 매일신보 게재·대국 일시는 1927년)보다도 훨씬 앞선 희귀 자료다.

일본 잡지(기계신보)가 1909년 이인직과 일본인 하라(原七郞) 프로 2단과의 6점 바둑을 실험적으로 게재한 적이 있으나 이것을 국내 첫 순장 기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새로 발굴된 39국 중 초기 6국은 1926년부터 1928년 사이 중외일보에, 나머지 33국은 1933년부터 1937년까지 3년 반 사이 조선일보에 각각 게재됐다.

이 무렵은 자유 포석 방식의 일본 규칙이 국내에서도 성행했던 시기. 조선일보에 실린 33국은 '조선기원 위기 대국보', '국수선발 위기 대국보' 등으로 타이틀전 형태를 띠었다.

안씨는 "다른 신문들이 모조리 일본 룰로 진행된 기보들을 싣는 동안 조선일보만 우리 고유의 순장 기보를 3년 이상 고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1937년 3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조선일보에 게재된 마지막 순장 기보(노사초·채극문전)는 비장한 느낌마저 준다. 그 해 1월 1일 유진하 윤경문 등의 국수급 기사들이 '현대화'를 명분으로 순장 바둑 폐지를 결의한 직후였기 때문.

안영이씨는 이 기보와 관련해 “배달 민족의 얼이 서린 순장 바둑을 그리 쉽게 버릴 수는 없다는 조선일보의 선언적 행동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시대의 흐름에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던 듯, 이 판을 끝으로 자유 포석 기보를 싣기 시작했다.

'첫 수' 착점과 관련된 표기법도 순장바둑 규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1926~1938년 사이 중외일보와 매일신보가 1착을 백으로 시작한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1933년부터 일관되게 복점(腹點·천원)의 흑 1을 첫 점으로 표기한 것.

안영이씨는 "당시 실력자였던 윤경문의 주도로 한때 백 1로 표기됐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둑 원리상 복점의 흑 1로 시작한 조선일보 방식이 당연히 정법(正法)"이라며 "이번 기회에 국내 일부의 오류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란 견해를 밝히고 있다.

순장 기보에 해설이 따라붙기 시작한 것은 1934년 2월 16일부터 3월 7일까지 조선일보에 게재된 정규춘 대 채극문전이 처음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1보 아닌 2보부터 첫 해설이 등장한 것도 흥미롭다.

'黑의 丙의 六은 丙의 五에 置할 듯하나 白의 連絡을 斷絶하기 爲하야는 그리 놋는 것이 必要코 그래서 白의 形勢는 弱해?다…'는 유진하의 첫 문장이 고색 창연하다.

순장 바둑에도 현대식 '덤(공제)'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안영이씨는 숱한 바둑 관련 사료(史料) 중에서도 순장 바둑의 비밀 규명에 반평생을 바쳐온 재야 사학자. 90년대 초부터 각종 도서관을 샅샅이 뒤진 14년 작업이 요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발굴된 기보들을 검토한 김인 九단은 “옛 선조들의 발상과 수법은 지금 보아도 무릎을 치게 된다”면서, “우리의 얼이 녹아있는 순장 바둑의 전모를 속 시원히 밝혀낸 이번 작업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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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바둑이란?… 흑백이 기착점 8개씩 놓고 시작

순장(巡將) 바둑은 ‘조선 바둑’이라고도 불리는 한민족 고유의 기법(棋法)이다. 흑 백이 각각 8개의 기착점을 놓은 뒤 흑이 천원에 첫 점을 놓으면서 대국이 시작된다. 포석 절차가 생략된 탓에 바둑은 곧바로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계가할 때는 잡은 돌을 상대에게 돌려주고, 경계선에서 단수가 안 되는 곳의 돌을 모두 들어낸 다음에 집 수를 비교한다. 순장 바둑이 언제부터 두어졌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정설이 없다.

일제 치하이던 1930년대 바둑계에선 자유 포석제의 일본 식 룰이 성행했으나, 당시 조선일보만 유일하게 우리 고유의 순장 바둑을 4년 가까이 게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쪽이 1933년 실린 채극문·정규춘전. 아래쪽이 1937년 노사초·채극문전 순장 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