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중심은 사실 청계천이었다. 옥인동과 삼청동 계곡을 흘러온 인왕산 지류를 시작으로 수표교를 지나 남산과 낙산의 여울이 모여 멀리 중랑천과 만나 살곶이 다리 건너 뚝섬으로 굽이돌던, 이름조차 '맑은 여울'이던 그 청계천을 우리는 잊고 있다. 추하다고 덮어 버린 곳, 흉물스런 고가도로 아래 메탄가스가 언제 터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미군들은 다니지도 않는다는 저 잊혀진 한양의 중심을 이제는 후손을 위하여 회복하여야 한다…."
1995년 3월 11일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청계천을 살리자'는 제목으로 내가 이런 제안을 했을 때, 꼭 10년 후인 오늘, 실제로 청계천이 저렇게 복원될 줄이야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시 나는 단순한 청계천 복원뿐 아니라 세종로에서 동대문까지 종로와 청계로 사이의 약 15만평을 강북 서울의 중앙공원으로 비우는 좀더 거창한 제안을 하면서 "2020년의 미래 서울을 위한 꿈이 아닌 실재의 계획으로 시작되길 바란다"고 당찬 희망을 쓴 바 있다. 그때 쓴 내용처럼 동(洞)이라기엔 너무 작은 듯한 관철동·관수동·예지동 등이 정말로 15년 후에는 청계천과 더불어 거대한 숲길공원이 될지도 모르리라.
나야 당시에 봄날의 꿈처럼 황당한 제안을 쉽게 했을 수 있지만, 이런 꿈을 구체화하고 또 실천에 옮긴 도시행정가들은 실로 위대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올 가을이면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될 이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며칠 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청계로 전 구간을 드라이브할 기회가 있었다.
곧 물이 흐르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노닐게 되면 지금 상상하는 이상으로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내 눈에는 너무 깊어 여울의 맛이 없고 남북으로 단절된 계곡에 놓인 무수한 다리, 그중에도 특히 보행 전용 다리들은 한결같이 아름답지 못했다. 못생긴 것이 아니라 너무 멋지게 보이려 애쓰다가 한두 개를 제하고는, 구조적 조형의 당위성이 결여된, 무대 위에 세운 가짜 다리의 모습이었다. 교량의 설계자나 선정하신 분들의 뜻이 혹 설치 조형의 개념이었다면, 그 형태가 구조적인 듯한 모습이면 더욱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세기 말, 파리의 에펠탑보다 먼저 세워진 에든버러의 '포스 브리지'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뒤로 넘어지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너무도 아름다운 벤저민 베이커의 유명한 교량이다. 또 최근 예술의전당 앞에 세운 프랑스 건축가의 육교는 원반의 폭포와 함께 케이블 구조의 아름다운 진수를 보여 주지 않는가?
외국의 예가 싫다면 청계천 끝자락에 세운 조선조 보물인 저 유명한 살곶이 다리, 봉화 청암정 연못을 건너는 작은 돌다리 모두 한결같이 재료와 용도에 걸맞은 완벽한 구조적 조형의 걸작이 아니던가. 성산대교의 아치처럼 구조를 흉내낸 가짜 조형은 설치 미술도 아닌 도시의 흉물로 남아 결국은 철거 대상이 될 운명일 것이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뚝섬 유원지에서 보는 강북도로의 콘크리트 옹벽에 150m가 넘는 길고 장대한 인공 폭포를 설계한 나도 완공된 후에 무슨 욕을 들을지 알 수가 없다. 비판의 대상은 결국 작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혹 저 다리가 오히려 멋있다 여길지도 모르며, 위대한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에 비하면 일개 건축가의 부질없는 시비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저 다리가 예뻐 보이질 않는다.
(류춘수·건축가·이공건축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