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묘한 일이다. 지난 18일 '농구 대통령' 허 재(40)가 KCC의 신임 사령탑으로 취임하던 바로 그 순간. 그가 7년여 동안 몸담았던 TG삼보 농구단의 모회사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금융시장에 끼친 영향이 미미했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삼보컴퓨터의 비운은 이미 예견됐던 일. 그런데 허 재가 떠난 기업은 곧바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현실은 더욱 기묘하다. 지난 98년 그가 TG삼보의 전신인 나래로 이적하면서 전 소속팀인 기아 농구단의 모기업 기아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어쨌든 삼보컴퓨터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TG삼보 농구단도 조만간 존폐의 기로에 몰릴 전망이다. 프로농구판에서 TG삼보는 그동안 '용산 마피아'의 본산으로 불렸다. 용산 마피아는 서울 용산고 출신들이 구단의 주축을 이룬데서 비롯된 말. 용산 마피아의 신화는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휴대전화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인 지난 97년 '삐삐'로 불리던 무선 호출기 시장에서 재미를 보던 삼보컴퓨터의 자회사 나래이동통신은 프로농구 출범으로 해체가 예고됐던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농구단을 인수했다. 인수의 최종 결정권자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창업자의 아들 이홍선 현 나래텔레콤 대표이사. 용산고 출신인 이 대표는 농구단 창단의 실무를 고교 동기인 최형길 현 단장에게 맡겼다. 용산 마피아의 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창단하자마자 프로농구 원년리그서 깜짝 준우승을 일군 최형길 단장은 98년부터 본격적으로 용산 마피아를 조직했다. 당시 대우증권 농구단에서 운영팀장을 맡고 있던 김지우 현 사무국장을 영입했고, '사랑의 3점슈터'로 잘 알려진 정인교를 내준 대신 허 재를 불러들였다. 또 삼성에서 김승기와 양경민을 데려왔으며, 이듬해인 99년엔 삼성 트레이너로 있던 전창진 현 감독을 코치로 영입했다. 이들은 모두 용산고 출신들.
용산 마피아의 전성기는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됐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거물 루키 김주성을 지명한 것이다. 김주성을 영입하자마자 TG삼보는 이듬해 챔피언에 오르며 꿈을 이뤘다. 이후 정규리그 2회 우승과 함께 지난 4월 다시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으며 르네상스를 누렸다. 하지만 모기업 삼보컴퓨터의 몰락은 한국프로농구를 쥐고 흔들었던 용산 마피아에게도 해체의 수순을 강요하고 있다.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