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예천군청이 있는 예천읍에서 논밭이 좌우로 펼쳐진 34번 국도를 따라 7㎞쯤 달리면 예천공항이 눈에 들어온다. 완공한 지 2년이 갓 넘은 공항 청사는 아직 빳빳한 새 건물이다. 그러나 공항 정문에 다가가면 이곳이 폐쇄된 공항임을 실감할 수 있다. 정문은 철제 바리케이드가 막고 있고, 281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3085평 규모의 계류장은 옅은 먼지만 날리고, 청사 안에는 셔터를 내린 인터넷룸, 기념품점, 매점 등과 '사용 못함'이란 빨간 안내판이 붙은 사무실 문이 널려 있다. 12평짜리 영접실에는 의자·책상 등 집기가 다 치워진 채 전원이 꺼진 40인치 TV 한 대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연면적 1700여평, 2층 규모 청사엔 지금 한국공항공사 예천지사, 건설교통부 산하 부산지방항공청 출장소 등 방 2개만 덜렁 남아 있다. 직원도 공항공사 3명, 부산지방항공청 1명이 전부다. 부산지방항공청 장일복 소장은 "빨리 여길 떠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예천공항은 '공항' 명칭도 곧 뺏길 운명이다. 올 1월 건교부가 공항지정 해제를 예고했고, 이달 내로 국방부와 공항 재산권 이양 협상을 끝내면 '예천공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예천비행장'만이 남게 된다.

공항이 정상 가동되던 2003년 이전엔 경찰, 국군기무사, 항공사 직원, 매점, 기념품점 상인 등 50여명이 상주했다.

하지만 2003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이 예천~제주노선 운항을 중단하면서 예천공항은 급속히 폐가(廢家)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는 "이 노선의 적자 폭이 연간 20억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비행기 한 편 뜰 때마다 3400만원씩 손해를 봤다"고 했다. 결국 지난해 5월 15일 문을 닫게 됐고, 간판까지 내리게 된 것이다.

예천공항은 1975년 군비행장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89년 당시 국회의원 유학성(작고)씨가 민간공항으로 변신하는 데 힘을 써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주민 김기수(56)씨는 "그땐 비행기 한번 타볼 수 있겠다며 다들 좋아했다"고 말했다. 상주·안동·영주·문경 주민들까지 끌어들이며 한때 이용객이 1997년 39만명에 달했다.

그러던 그해 6월 건설교통부는 지방공항 확장 계획을 통해 예천공항에 새 청사를 짓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예천의 경우 "구(舊) 청사가 비좁아 늘어나는 항공수요를 감당 못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예천공항 이용객은 1997년을 정점으로 98년엔 21만7000명으로 떨어지며 계획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 난국(難局)을 타개한 것은 정치권.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1999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북 영주·안동을 찾아 예천공항 확장 등 개발을 약속했고 두 달 뒤 예천공항 청사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이미 중부내륙고속도와 중앙고속도로 등 예천을 교통오지(奧地)에서 벗어나게 하는 도로망이 완공을 앞둔 상황이었다.

2002년 12월 386억원을 들여 연 100만명을 처리할 수 있는 예천공항 신청사가 마침내 문을 열었지만 이미 예천공항은 중병을 앓는 상태였다. 이용객은 2000년 13만3000명, 2001년 8만6000명, 2002년 3만2000명으로 날개 없이 추락하더니 2003년에는 1만9000명에 그쳤다.

주민 이준태(43)씨는 "고속버스를 타도 서울까지 2시간30분이면 가는데 누가 비싼 비행기를 이용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예천군 인구는 90년 7만9167명에서 2004년 5만2132명까지 내려갔다.

정작 주민들은 예천공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공사 이종봉 팀장은 "공항 없앤다고 항의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말했다. 예천군의회도 "공항되살리기운동 같은 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예천군 이정표 부군수는 "고가의 건물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묘안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 이길희(42)씨는 "그러게 뭐하러 돈을 처발라 그런 걸 짓고 그랬느냐"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 건물을 농수산물유통센터, 다른 공기업 지사 등 생산적으로 개발하길 원하지만 이미 건교부와 국방부 간 건물 양도 협약이 완료된 상태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문경·예천 출마 후보들은 일제히 "예천공항에 비행기가 다시 뜨도록 하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뇌사(腦死) 지경이던 예천공항은 사망확정서를 받았다. 건교부 관계자는 "잘못된 정책 판단과 정치권 인기 전략이 맞물린 예산 낭비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완공된 지 2년만에 '폐가의 길'로 접어든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공항의 황량한 모습. 2003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이 예천-제주노선 운항을 중단하면서 예천공항은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