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례 중인 조선왕조 마지막 왕족인 왕세손(王世孫) 이구(李玖)의 존호(尊號)로 저하(邸下)라는 낯선 말을 쓰고 있다. 한·중·일(韓中日) 한문 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아래 하(下) 존칭의 역사가 유구하다.
이를테면 폐하(陛下) 전하(殿下) 각하(閣下) 등이 그러하듯 존대할 상대가 거처하는 건물이나 발 아래에서 우러러본다 해서 존칭이 된 것 같다. 황제가 근무하는 용상에 오르는 계단을 폐(陛)라 하는 데서 폐하(陛下)는 황제에게만 쓰는 존칭이 되고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는 왕은 집무하는 전각의 이름을 따서 전하(殿下)이며, 정승이 집무하는 거처를 각(閣) 또는 합(閤)이라 한 데서 각하 또는 합하는 정승의 존칭이다. 장군을 휘하(麾下)라 존대했는데 휘(麾)는 일선에서 지휘관을 상징하는 대장기(大將旗)다. 사신은 수레를 타고 다닌다 하여 곡하(?下)라 존대했고 부모를 무릎 아래란 뜻인 슬하(膝下)라 존대했음이며 다정한 사이의 존칭으로서 상대방의 발 아래 있다 해서 족하(足下)라 했음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각하란 존칭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 더욱이 일본 제국주의가 이 존칭을 도입하면서 임금이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勅任官)과 무관으로는 소장(少將) 이상의 장성에게 쓰는 존칭인 것을 우리나라에서 격상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아래 하(下) 존칭을 보아왔지만 왕세손 이구의 별세로 저하란 존칭이 등장해 낯설게 했다. 집 저(邸)라 전각보다 낮은 집이기에 전하보다 낮은 존칭임은 가늠이 가나 한적(漢籍)에 나오지 않는 말이며 우리 문헌에는 '고려사' 열전에 왕세자 시절의 충선왕의 존호로 저하란 말이 처음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세자의 존호가 자주 등장해 내리다가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주상 전하'가 '대군주 폐하'로 '왕세자 저하'가 '왕태자 전하'로 격상하면서 저하라는 존칭은 한국사에서 사라졌다. 왕세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존칭은 전하가 되고, 장례 중인 이구는 세자 책봉을 받지 않은 왕세손이라 하여 전하보다 한등 낮은 저하란 존칭을 찾아 쓴 것 같다. 영구(久)한 왕(王)이란 뜻이 담겨있는 이구(李玖)―이웃나라 잘못 두어 이름에다 못다한 원망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 저하―명복을 빈다.
입력 2005.07.2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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