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댓글을 보신 기억이 있는지. '도청사태, 어디까지 불똥튈까'같은 심각한 정치 기사 밑에 누군가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뜬금없는 댓글을 달아 놓는다. 이어 '드!!' '라!!' '군!!'이라고 주루룩 댓글이 달려있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리플인가 궁금해 한다면, 당신은 구식 네티즌이다.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군 놀이'다.

놀이의 기원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김성모 화백의 만화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등장하는 프로토스족이 위기를 겪게 되면서 전투 유닛인 드라군을 출동시켜보면 어떨까라고 묻는 대목을 네티즌들이 장난삼아 따라하면서 시작됐다.

김성모 화백의 만화‘스타크래프트’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를 그대로 패러디한‘드라군 놀이’. 단순하고 유치해 보이는 이 놀이가 인터넷 댓글난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 유치하고 생뚱맞아 보이는 놀이에 네티즌들이 열광하고 있다. 28일엔 박지성이 입단한 영국 축구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까지 ‘드라군 놀이’가 전염됐다. 이날 맨유 홈페이지에는 한 네티즌이 “I agree but what will happen if the Dragoon into action?(당신 말이 맞다.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썼고, 그 아래 ‘D’ ‘RA’ ‘GOON’이 리플로 달렸지만 게시물은 즉각 삭제됐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는 ‘드라군 놀이’로 댓글난이 도배질되자 27일 오후부터 ‘드라군’을 금칙어로 지정해 ‘드라군’이 들어간 문장을 아예 입력하지 못하도록 했다.

'리플'이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리플은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 네티즌들이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메인 콘텐츠에 붙어있는 곁가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최근 '드라군 놀이'처럼 댓글 자체를 통한 놀이가 새로운 네티즌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리플은 커뮤니케이션의 주역으로 격상됐다. 특이한 것은 리플이 게시물과는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 세포 분열을 통해 자가 발전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수의 네티즌들끼리 폐쇄적으로 소비한 채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왜 네티즌들은 이런 '리플 놀이'에 열광할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리플에 몇 초 간격으로 반응하며 순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땐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져요. 사이버 공간에서 내가 살아있는 생물같다니까요." '드라군 놀이'에 몇 차례 '가담'했다는 이성현(28)씨 얘기다.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김선옥 팀장은 "개성 강한 신세대 네티즌들은 리플을 통해서도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를 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리플러(리플다는 사람)로만 활동하며 인기를 끄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네티즌들의 리플 놀이 중독이 이중적인 사고 행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는 싶지만,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소수의 제한자들에게만 보여주려하는 네티즌들의 이중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구속되기는 싫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일체감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리플 놀이'는 '플래쉬몹(불특정 다수의 군중이 특정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행동을 한 뒤 흩어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네티즌들의 '자기노출증'과 놀고 싶은 '놀이 본능'이 합쳐진 결과, 리플이 게시물에 대한 피드백의 공간이 아니라 네티즌들의 놀이터가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