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李源·43)씨는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지난 7월 22일, '마지막 황세손' 고(故) 이구(李玖)씨의 양자로 결정된 뒤 양아버지의 빈청(=빈소)을 상주로서 급작스레 지키게 됐을 때의 부담감은 많이 떨어버린 것 같았다. 황사손(皇嗣孫).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사장 이환의)에서 그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다. '황실의 적통을 이은 자손'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16일 오후, 창덕궁 앞에 자리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사무실에서 언론과 첫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신문 등에 보도된 뒤 주변에서 집을 옮기고,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현대홈쇼핑 부장으로 일하고 있고,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이씨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출신으로, 서울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친왕의 9남 이충길씨)를 따라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프로듀서의 꿈을 안고 뉴욕에 있는 NYIT(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아버지와는 달리 대학 졸업 뒤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방송 프로듀서 등으로 일했다.
현대홈쇼핑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과의 인연 때문. 1992년 대선 때, 당시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이던 이 사장 밑에서 홍보를 맡았는데, 이 사장이 2000년 현대홈쇼핑 사장으로 부임하자 그를 따라 현대홈쇼핑에 입사한 것.
"아버지로부터 제가 왕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던 것은 미국으로 이민 가기 직전, 아버지가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영친왕비(이방자 여사)에게 인사드렸던 날이었습니다. 영친왕비를 뵌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삼류 잡지 등의 '황실 자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식의 기사에 신물이 난 탓인지, 저에게는 가족사를 일절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네 피는 이곳에 흐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원씨는 3년여 전부터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고 이구씨의 양자로 거론됐다.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 감각도 있다는 사실 등이 이유였지만, 황세손을 만난 것은 단 두 차례였다고 한다.
"양아버님과 깊은 이야기는 사실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정도였지요."
그는 앞으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주관하는 종묘대제(宗廟大祭·조선의 역대 왕 등에게 드리는 제사) 등의 초헌관(初獻官·국가가 행하는 제사 등에서 첫 잔을 올리는 사람) 등을 맡게 된다.
"솔직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저에게 닥친 운명인 이상, 더 공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대중문화와 연출을 공부한 만큼, 제 양아버지가 왜 그처럼 불운하게 살아야만 했는지, 영친왕이나 의친왕 등 고종 황제 후손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 등을 고민할 생각입니다."
후사를 잇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구씨와 강제로 이혼당한 줄리아 여사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화해' 가능성을 묻자 그는 짧게 답했다.
"줄리아 여사께서 양아버지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기꺼이 듣겠습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어떤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영화감독 유하씨가 그와 상문고 동기이다. 그는 유씨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상문고를 배경으로 만든 것 같다며 학창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입력 2005.08.18. 18:32업데이트 2005.08.1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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