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광식은 윤경에게 고백할 기회를 번번이 놓친다.

볼품없는 로맨틱 코미디의 실패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우수한 로맨틱 코미디의 성공 이유는 비슷하다. 배우들 매력을 손에 잡힐 듯 살려낸다. 사랑에 관한 달콤한 판타지를 극대화하면서 삶에 대한 쌉싸름한 맛이 살짝 배어들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개별 에피소드들은 톡톡 튀는 내용으로 끼워놓되, 다 보고나면 잘 짜인 연애개론서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올 충무로에 그런 로맨틱 코미디가 있었냐고?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가 25일 개봉한다.

광식(김주혁)과 광태(봉태규)는 형제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광식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광태는 능숙한 '작업' 솜씨로 많은 여자들을 전전한다. 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짝사랑 윤경(이요원)에게 광식이 이번엔 고백할 수 있을까. 몇 번 만나지 않아 잠자리까지 하게 된 경재(김아중)로부터 결별 선언을 들은 광태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사랑일까.

'광식이 동생 광태'는 귀엽고 깔끔하면서 따뜻하고 성숙하다. 대중영화적 재치가 빛을 발하는 이 영화는 선명한 캐릭터를 전형적 구도에 풀어놓은 뒤 개별 사랑의 특수성과 연애 일반의 보편성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잡는다. 남성 관점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직접 경험한 듯 주변에서 채집한 듯 생생한 일화와 대사는 남자끼리의 묵계를 깨고 소수의 '배신자'들이 여자들을 향해 폭로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스테이플러에서 새우볶음밥까지 흔한 소재로 상징을 담아내는 솜씨도 좋다.

무엇보다 정점에 오른 김주혁과 봉태규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홍반장'이나 '프라하의 연인'의 정반대 모습으로 그가 세심하게 빚어낸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번번이 사랑을 떠나보내지만 영화 밖에선 관객 애정을 한 몸에 받을 만하다. 이악스럽지 않으면서 믿음직한 충무로 스타를 만나는 게 얼마만인가. 봉태규는 미움을 사기 쉬운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지만 특유의 표정과 맛깔진 대사 처리로 영화의 나머지 절반을 단단히 책임졌다.

그러나 결국 '광식이 동생 광태'는 광식이 영화다. 극중 경재의 마라톤 등번호조차 광식과 배우 김주혁 그리고 감독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72'이고, 제목에서 광태는 '광식이 동생'이란 전제가 있어야 존재 의미를 지닌다. 감독 애정이 그대로 담긴 광식이 이야기는 사랑이 찾아온 순간의 설렘부터 엇갈린 인연에 대한 관조까지 차곡차곡 담아낸 뒤 눈물을 삼킨 눈과 미소를 베어 문 입으로 한 남자의 청춘을 요약한다. 시종 이어지는 재기 넘치는 유머에도 불구하고, "인연은 운명의 실수나 장난까지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라는 대사가 나올 때 안온한 체념의 정조를 잊긴 힘들다.

'광식이 동생 광태'는 '연애의 목적'이나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어깨를 겯고 활보하는 영화가 아니라, 80년대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90년대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 뒤를 따라 걷고 있는 작품이다. 스타일은 유행을 타거나 진화해도, 감정이란 결국 복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