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이 가장 고맙죠." 지금까지 아들이 받아온 수많은 상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꼽아달라고 했다. 손민한의 아버지 손용태씨(56)와 어머니 김영자씨(53)는 주저없이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이라고 답했다. 그 메달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서막이었다. 또 아들 보다는 그의 동료들이 잘 한 덕분에 병역면제 혜택을 얻었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야구는 단체종목이다. 부모는 '나 홀로 잘난 1등' 보다 '다함께 노력한 2등'이 더 소중하다고 가르쳤다.
◎남들 만큼은 해주고 싶었다
손민한은 어릴 때 서예, 주산, 피아노 등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과외활동을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날 아들은 야구를 하겠다고 나섰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먼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자신있냐"고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네가 하고 싶으면 해라"고 허락했다. 그러나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지는 않았다. 1남2녀 중 둘째인 손민한은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먹는 것 등 세세한 부분은 물론, 집안의 모든 무게중심이 아들에게로 옮겨졌다. 아들이 야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면 부모는 열성적인 뒷바라지에서 단연 1등이었다. 덕분에 큰딸과 막내딸은 있는 듯 없는 듯 자랐다. 지금도 손민한은 누나와 여동생에게 몹시 미안해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손민한은 일찍부터 야구에 소질이 있었다. 항상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으로 뛰었다. 덕분에 부모는 걱정이 하나 늘었다. "혹시 선배들한테 미움받지 않을까 마음이 편치 않았죠." 그래서 아버지는 늘 넉넉한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영리한 아들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둥글게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야구를 하면서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크게 굴곡 없이 사는 걸 보면 사람 복을 타고 난 모양이에요." 한번도 부모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물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울타리를 벗어난 적도 없다. 아들이 바르게 자란 것은 항상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올바른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트레이너 겸 매니저
아버지는 10년간 거의 매일 아들의 등,하교길에 함께 했다. 학창시절 육상선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하체훈련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대회가 있는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따라다녔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속에 아들은 유능한 선수로 무럭무럭 자랐다. 프로 데뷔 이후 야구장에 직접 가는 일이 줄었다. 대신 TV 중계는 빼놓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못 하면 홈팬들이 원망하고, 잘 하면 상대팀이 욕을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꼼꼼한 아버지, 더 꼼꼼한 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더 닮았을까. 아버지 손용태씨는 "민한이의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은 나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어머니 김영자씨는 "나는 민한이 아버지보다 조금 더 꼼꼼하고 세밀한 편"이라고 말했다. 타자와의 수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마운드의 카리스마는 부모에게 물려 받은 기질인 모양이다. 손민한의 어머니는 "요즘도 침대에 누워 공을 만지다가 잠들어요. 선발 등판하기 전날에는 꼭 잠을 설치죠. 좀 무덤덤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예민해요"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올해 너무 잘 해서 내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올해보다 훨씬 더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늘 부모의 믿음보다 더 큰 결실을 이뤄낸 아들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조선 곽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