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인 1982년 3월 23일 경기도 송탄 미군 비행장 앞에 젊은 부부가 리어카로 햄버거 노점을 차렸다. 두툼한 쇠고기와 각종 야채에 달걀 프라이까지 끼워 넣은 푸짐한 햄버거가 500원. 맥도날드나 버거킹과는 재료도 모양도 다른 '한국형 햄버거'였지만 '진짜 미국 햄버거보다 더 크게 만들어 무지하게 싸게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군들이 줄을 섰다.

그로부터 24년, 이 햄버거 집은 이제 송탄의 손꼽히는 '명물'이 됐다. '미스리 햄버거'다. 오늘까지 변함없이 햄버거를 팔고 있는 주인은 '미스리'가 아닌 '미세스 곽', 곽미란(48)씨다. 단골 미군들이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그냥 '미스 리'라고 대답한 게 가게 이름이 됐다. 곽씨와 남편(김정수·60)은 이제 초등학생 손녀까지 두었다. 리어카 노점은 자그마한 가게로 바뀌었고 초로(初老)의 부부가 만들어내는 햄버거의 내용물에는 '삶의 향기'가 추가됐다.

젊은 날 햄버거 가게 아이디어를 낸 것은 남편 김씨였다고 곽씨는 말했다.

"식모살이 하다가 열일곱에 시집 왔는데, 미군클럽에 맥주 배달하던 남편이 '햄버거'라며 고기랑 야채가 든 빵을 가져 왔어요. 이걸 만들어 팔아 보자는 거예요. 요새 말로 '블루오션'이었지."

부부는 억척스러웠다. 오후 4시에 시작해 새벽 4시에 접을 때까지 어린 딸과 아들은 재료를 나르느라 수없이 집과 리어카를 오갔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인심'은 늘 풍성하게 얹혔다.

햄버거 장사로 자식 키우고 집도 장만했지만 10여년 만에 시련이 왔다. 곽씨에게 암이 발견된 것. 치료를 위해 94년부터 4년간 가게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송탄이 속해 있는 평택시에 미군기지가 추가 이전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가게 임대료가 폭등해 영세 상인들은 하나 둘 송탄을 떠났다.

24년째 경기도 송탄 미군기지 앞에서 ‘미스리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곽미란씨. 이 가게는 이제 송탄의 명물이 됐다. 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하지만 '미스리 햄버거'는 98년 원래 자리에서 50m 떨어진 곳에 24석짜리 가게로 '부활'했다. 메뉴도 스테이크버거, 칠리버거 등 15개로 늘었다. 24년의 세월 동안 부부가 미군들과 나눈 것은 햄버거만이 아니었다.

"단골이던 미군이 귀국하게 되면 집으로 불러서 불고기랑 김치랑 해서 저녁식사도 대접했어요. 군복을 벗은 뒤에도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무조건 송탄으로 달려 온다는 미국인들이 여럿 돼요."

요즘도 옛 단골이 가끔 미국서 덜컥 찾아와 부부를 놀라게 한다. 2주 전에는 80년대 초반 곽씨의 리어카에서 햄버거를 사먹던 미군 이등병 '톰'이 20년 만에 연락도 없이 찾아와 반갑게 얼싸안았다. 40대의 톰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록 밴드 가수가 돼 있었다.

'미스리 햄버거'는 이제 장성한 아들·딸과 함께 꾸려가는 어엿한 '가족기업'이다. 쇠고기·양파·양배추·피클·양파·마요네즈·머스터드에 달걀 프라이를 끼워넣은 기본 햄버거가 1500원. 곽씨는 "재료값을 못 이겨 올려야겠다 싶다가도 단체 주문하는 군인이나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온 집시 같은 젊은이를 보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요새 손님은 열에 아홉이 한국인이다. 평택 납품길이면 빼지 않고 들른다는 김준호(34)씨는 "햄버거 속이 너무 푸짐하다 보니 피클이 삐져 나와 콧구멍에 닿는다"고 '불평'했다. 주변에 '미스리 햄버거'를 닮은 가게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햄버거 가족'은 꿈이 있다. 작은 건물을 지어 1층은 햄버거 가게, 2~3층은 살림집으로 꾸미는 것. 그렇게 3대가 모여 살며 '가문의 맛'을 전하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