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건영캐스빌 아파트. 정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키가 큰 느티나무 2그루가 방문객을 반긴다. 그 옆으로 200평 규모 텃밭에 하얀색의 앙증맞은 흰제비꽃, 20cm 크기로 자란 조팝나무, 붓꽃, 초롱꽃 등 19종(種)의 야생화 4000본이 이름표를 달고 화단 가득히 자리잡았다. 정성스레 가꾸어진 화단 뒤로는 매일 물을 주고, 호미로 흙을 고르고, 잎을 닦아주며 돌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꽃을 사랑하는 모임(꽃사모)' 회원인 이 아파트 주부들 20명이다. "우린 꽃에 빠진 아줌마들이에요."

'꽃사모'가 생겨난 것은 지난 2005년 5월. 반상회에서 아파트 화단에 무얼 심을까 논의를 하다 뜻 맞는 주부들 5명이 뭉쳤다. 초창기 멤버 이연희(56)씨는 "그때만 해도 화단에 나무 대신 쓰레기가 가득했을 정도로 조경이 형편없었어요. 마침 다들 주부들이라 시간도 많고, 좋아하는 화초도 실컷 가꾸면서 봉사활동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시작한 거죠."

회원들은 '가계부'부터 마련했다. A4용지 크기의 연습장에 '802동 화단 앞은 방문객이 많으니 철쭉 200주' 같은 계획은 물론, '3월 양재시장, 비료 20포 14만원, 아껴 씁시다' 등 구매내역까지 적어 넣었다. 또 20~30만원 자비를 들여 양재꽃시장을 찾아 저렴하고 질 좋은 꽃을 골라 실어왔다. 그렇게 심은 게 벌써 철쭉 500본, 보랏빛 꽃이 피는 맥문동 450본 목화씨, 로즈마리 등 종류만 20가지가 넘는다. 꽃 시장뿐 아니라 근처 한택식물원을 견학하고, 화단이 예쁘다고 소문 난 동네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공부도 했다.

"어떻게 하면 화단을 보기 좋게 꾸미면서 자투리 공간 활용도 할까 다같이 고민도 많이 했어요. 소나무와 철쭉을 멋드러지게 심었다는 도곡동 아파트까지 단체로 견학을 갔는 걸요."

'꽃사모' 회장님 김연옥(72)씨가 말했다. 김씨는 여의도에서 꽃꽂이 학원을 운영한 이후 지금까지 '30년 화초 인생'을 살아온 원조 꽃사모 회원. 이사를 갈 때면 살던 집 앞에 꼭 목련, 향나무 등 나무·꽃을 심어놓고 올 정도다. "아깝다는 생각 전혀 안 들어요. 돈 몇 천원과 시간만 좀 들이면 보는 사람 기분도 좋고 공기도 맑아지고 다 투자하는 거예요."

김씨 외에도 새벽 5시부터 화단에 나와 물을 주는 박신숙(64)씨, 집 베란다를 꽉 채우는 100여개 화초를 가꾸는 이순영(55)씨, 교사로 재직할 때 학교 화단을 열심히 가꾸던 주부 최금순(63)씨 등 다른 회원들 경력도 만만치 않다. 집에서 기르기 좋은 화초, 물을 얼마나 자주 주고 햇빛은 어떻게 쬐어야 하는지, 주민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는 것도 이들 몫이다.

이같은 열성 덕분에 '꽃사모'는 지난 7일 '선물'을 받았다. 3월 말 경기녹지재단이 공모한 '우리꽃 화단 조성 행사' 시범사업단지로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것이다. 건영캐스빌 입구 오른쪽 화단에는 녹지재단이 제공한 4000본의 야생화가 심어져 있다. 20명으로 늘어난 '꽃사모' 회원들은 이제 두툼한 야생화 백과사전을 들고 꽃이름, 재배법을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돌볼 화단이 늘어 더 바빠졌다"는 김연옥 회장은 "앞으로 원추리, 구절초, 금낭화 등 가지각색 야생화가 활짝 피는 화단을 근처 초중학교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가꾸는게 꽃사모의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