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시, 저는 지금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 시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바이칼 호로 흘러드는 작은 강물을 좇고 있습니다. 한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강물은 같은 곳을 두 번 흐르지 않는다." 또 다른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강물과 같다." 두 철학자의 말을 결합하면 우리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강물 속엔 또 다른 강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물이자, 우물이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내 주위에 머무르고 있는 물의 영혼입니다. 온 마을 사람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는 진짜 우물을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강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강을 바라보며 곰곰 생각하는 내게 강물은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매 순간 만나는 모든 것은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물이 수원(水源)에서 솟아나와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모든 풍경은 늘 새롭습니다. 이 모든 새로움을 두려움 없이 기쁘게 맞아야 합니다. 강물은 결코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강기슭은 언제나 풍요롭습니다. 초목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와 접하는 이들은 누구나 우리가 목마른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돌은 우회해야 합니다. 물론 물은 돌보다 강하지만, 돌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방해물에 사로잡혀 집요하게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에너지의 낭비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출구를 찾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게 낫습니다.

웅덩이를 만나면 인내합니다. 갑자기 깊게 파인 자리를 만나면 물은 이전처럼 즐겁게 흘러가지 못합니다. 그런 순간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의 도움입니다. 기다리고 인내하며 파인 곳을 가득 채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보잘것없고 생기 없는 웅덩이를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호수로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는 특별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예비한 곳에서 생겨나 항상 그곳 수원으로부터 웅덩이를 만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인내와 힘, 물을 공급 받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부드럽고 미약합니다. 작은 나뭇잎 하나로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생성한 근원의 신비를 존중하고 그 영원한 지혜를 믿을 때, 우리는 점차 갈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특별한 우리는 곧 수많은 우리를 만납니다. 여행을 계속 할수록 다른 수원에서 온 물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닌 여럿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성경에서도 말했듯 "모든 강은 바다로 흘러 들기 때문"입니다. 고독 속에 홀로 남는 것이 아무리 낭만적일지라도 결국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다른 수원으로부터 온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장애물과 웅덩이를 더 쉽게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잎사귀 한 장, 보트 한 척 또는 여러 생각이 이동하는 길입니다. 우리 강물이 좀더 너그러워지기를, 항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우리는 기원합니다.

우리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브라질 시인 마누엘 반데이라의 시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깊은 밤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라/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늘의 모든 별을 제 물결에 비추고/ 하늘이 구름에 가리면/ 구름 또한 물 같고 강 같아/ 흔쾌히 그들을 비추리/ 깊고 깊은 침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