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대표팀 감독의 심정이 이같을까. 쏟아지는 호평 속에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한국영화의 위기'로까지 치부될 상황. 27일 '괴물'의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은 설레면서도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기대가 크니 당연히 걱정되죠. 1차, 2차 관문은 어쨌든 통과했는데 관객의 심판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초초해요."

널리 알려졌듯이 '괴물'은 19년 전 '소년 봉준호'가 본 판타지의 산물이다. 당시 고3 수험생이던 봉 감독은 한강으로 창이 난 방에서 한강 다리를 기어오르다 뚝 떨어지는 괴물체를 목격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생명체이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크기는 아마 영화 속 괴물과 비슷할 거예요."

그것이 실제 괴물이든 입시 지옥의 스트레스가 만든 환영이든 상관없다. 중3 때부터 영화 감독을 꿈꾸던 소년이 어렸을 때의 추억을 19년이 흘러 명품으로 탄생시켰다는 것은 한국영화사의 뿌듯한 이정표다.

영화는 원래 '살인의 추억'을 찍던 5년전 처음 고안됐다.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아이디어를 듣고 '언제든 기다릴 테니 함께 하자'고 용기를 북돋았다. 정식으로 기획에 들어간 건 3년 전.

"정말 특수효과를 알차게 찍고 싶었어요. 제작비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터무니없이 드는 건 바라지 않았죠. 처음엔 국내 업체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기술보다 시스템적으로 무리더라고요. 해외업체를 알아봤는데 유명한 ILM은 하나의 샷에 1억을 달라는 거예요. 영화 속에 괴물이 120샷이거든요. 그러면 괴물에만 120억원이 들잖아요."('괴물'은 순제작비 110억원이 들었다)

한국적 유머 가미… 송강호 등 색깔있는 연기 믿어

'괴물'의 배경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린 날, 강남에 소재한 제작사 건물에서 봉준호 감독이 포즈를 취했다.

물색 끝에 ILM에서 독립한 미국의 오퍼니지를 최종 선택했다. '저렴한' 가격(샷당 3000만원)이었지만 그들은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봉테일'이라 불리는 감독 특유의 꼼꼼한 주문이 더해지면서, '괴물'은 소름끼칠 정도로 세밀한 외양과 인간에 비견할 만한 노회한 성격을 부여받고 태어났다. 하지만 괴물이 아무리 정교한들 할리우드만 할까. 영화가 이처럼 극찬을 받은 건, 유머와 사회적 풍자가 가득한 한국적 드라마 덕분이다.

"'이쯤 돼서 웃겨야 돼'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아마 제 스타일인가봐요. 또 약하고 무능한 인물들이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좌충우돌하는 하는 거 아니겠어요?"  모든 드라마의 요소는 '봉준호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주요 배우들(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을 통해 빼어나게 구현됐다. 이전 작품들에서 낯익은 배우들이 다시 출연하면 몰입에 방해되진 않을까 물었다. "그런 면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배우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특수효과에 너무 진을 빼는 상황이니 드라마 쪽이라도 편하게 일해야죠."

봉 감독은 특히 송강호를 다시 봤다고 했다. 극중 유일하게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초반 어리바리한 성격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강한 부성을 드러내는 집중력이 빼어났다고.

'괴물'이 너무나 널리 회자된 까닭일까.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감독의 차기작을 궁금해한다.

"일단은 어머니를 소재로한 작은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그 다음엔 다시 SF에 도전하려구요. 프랑스 만화인 '설국열차'의 판권을 이미 확보해두었거든요." 이제 특수 효과에는 진저리가 난다고 하면서도 다시 SF를 찍는다면 감을 잡고 더 잘 할 자신이 있다는 그는 천상 완벽함을 향해가는 '봉테일'이었다.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