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구한말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맞서 1885년 제주도를 강점, 군사기지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제주도가 7일 발간한 '자료집·일본 신문이 보도한 제주도-1878~1910'에서 밝혀졌다. 제주출신 재일교포 양산진씨 등 4명이 제주사정립추진협의회와 제주도의 협조를 얻어 발간한 자료집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제주 근현대사의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1885년 3월 일본의 진제이(鎭西·큐슈)일보는 런던발 기사를 인용 "'시드니 데일리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가 조선의 남쪽에 있는 하나의 작은 섬, 즉 제주도를 해군 정박소로 하려고 한다는 풍설이 있다"고 첫 보도했다. 러시아가 제주도를 탐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도 며칠후 '노국(露國) 제주도를 노리다'라는 제목으로 러시아의 '오-스치신문'을 인용, "노국이 제주도를 얻으면 조선의 수도인 경성에 대해 쉽게 군사위력을 과시할 수 있고, 일본, 지나(支那·중국)의 근해를 견제하고, 태평양에 위력을 떨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제주 문제 보도에 가세하는 등 러시아의 제주도 점령설에 대한 일본의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아사히는 4월24일자에 제주의 지형·지세를 상세히 밝히고, "유럽나라들이 하나가 되어 이 섬을 점령하면 동양 삼국에 위력을 발휘할 충분한 근거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제이는 5월1일자 사설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뤘다. 특히 러시아의 제주점령 기도에 대한 영국의 동향을 자세히 전했다.
제주지역에서 발생했던 방성칠란(1898년)과 이재수난(1901년)에 대한 기사도 찾아 볼 수 있다. 일제가 이들 민란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 어민의 제주어장 침탈과 통어권 확보, 일본 어민의 보호 문제 등 제주어민과 일본 어민의 분쟁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 어민 중심으로 식민사업에 대한 치밀한 사전 조사와 연구에 대한 기사도 확인되는 등 제주어민의 수난사를 보여주고 있다.
입력 2006.08.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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