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그렇게 (힘들게) 건설을 해서 이렇게 (세계적 기업으로) 큰 모습을 보니 눈물이 다 나려고 해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황정순(82)씨와 최은희(81)씨, 장민호(83)씨 등 원로 배우들의 눈시울이 연방 붉어졌다. 지난 2일 오후 70년대초 인기 일일연속극 '꽃피는 팔도강산' 제작진이 포스코의 초청을 받아 32년 만에 다시 경북 포항제철소를 둘러본 자리에서였다.

개발시대 국민 계몽 드라마였던 '꽃피는 팔도강산'은 1974년 6월부터 두 달여 동안 준공 1년을 맞은 포항제철소를 무대로 전개됐다. 김노인 부부(김희갑·황정순 역)의 넷째 사위로 나온 고(故) 문오장씨가 고로(高爐) 공장장 역을 맡았고, 최은희씨는 첫째 딸을 연기했었다. 한혜숙(56)·김자옥(56)씨는 출연 배우중 막내로 미혼(未婚)의 일곱번째 딸과 손녀 역을 각각 담당했다. 그 때에는 동네 골목대장 놀이에도 '고로공장장'이라는 명칭이 등장할 만큼 이 연속극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드라마‘꽃피는 팔도강산’의 주인공들이 32년만에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찾았다. 사진 오른쪽부터 팔도강산에 출연했던 탤런트 장민호, 최정훈, 민지환,이향자, 최은희, 황정순씨, 대본을 쓴 윤혁민 작가, 윤석만 포스코 사장,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수동 PD, 오창관 포항제철소장

당시만 해도 포스코는 갓난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3년7월 연산 103만?의 쇳물을 생산하는 1고로가 완성돼 막 가동을 시작한 터였다. 하지만 준공 전부터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와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제철사업 진출을 반대한데다, 국내 여론도 반대 의견이 우세해 포스코의 앞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시절에 촬영을 했던 원로배우들인 만큼, 당시보다 30배나 커진 덩치에 세계 3위(연산 3150만?)의 철강업체로 올라선 포스코가 장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수동(73) 당시 KBS PD는 "관(官)에서 소개하는 곳이 다 그러려니 하고 갔다가 이를 악물고 일하는 포철 사람들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노전(爐前)반원 역을 맡아 직접 쇳물을 흘려 보내는 일을 하기도 했던 탤런트 민지환(70)씨는 "방열모를 썼는데도 쇳물에서 나온 열에 얼굴이 발갛게 익어 1주일 간 분장이 먹히지 않은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첫째 아들 역을 했던 원로배우 장민호(83)씨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칵테일 파티 자리에서 '꽃피는 팔도강산' 덕분에 (포철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작가 윤혁민(69)씨는 "당시 독재에 협력이나 하고 있느냐는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긍정이 역사를 바꾼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다시 와서 보니, 그 시절의 힘과 추진력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윤씨가 지난 4월 '꽃피는 팔도강산'을 중국판으로 리메이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포스코 역사관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윤석만(59) 포스코 사장이 제작진을 모두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윤 사장은 당시 공보과 말단사원으로 이대공 공보과장(66·현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과 함께 제작진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다. 윤 사장은 "말단사원이 사장까지 됐으니 앞으로 (이 일을) 기억할 사람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아 출연진을 초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4년 포항제철소에서 드라마‘꽃피는 팔도강산’을 촬영하는 모습.

이날 행사는 20여명에 이르는 제작진 전체가 초청 대상이었지만, 황정순·최은희·이향자·장민호·민지환·최정훈·김봉근씨 등 출연진 7명과 김수동 PD, 윤혁민 작가 등 9명만 참석했다. 김희갑, 황해, 박노식, 강민호 씨 등 6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전양자·태현실·박근형·한혜숙씨 등은 촬영 스케줄 등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윤석만 사장은 "원로배우들께서 오늘날 한류 문화의 기틀이 됐듯이, 포스코도 조선·자동차·가전 등 국내 산업 발전을 뒷받침하며 산업화의 상징이 됐다"며 "어려운 시절, 포스코를 널리 알려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