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영제국(英帝國)은 세계 영토와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고 있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의 대양에 수많은 해군기지를 운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미국 하바드대 교수인 저자가 2003년 출간한 이 책은 유럽대륙 서쪽에 붙어 있는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근대세계를 만드는데 절대적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준 문제작으로 학계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영제국의 선구자는 17세기 중반 서인도제도의 스페인 식민지를 습격한 영국 해적들이었다. 하지만 영제국의 본격적인 첫 건설자는 대포를 장착한 함선을 이용해 동방무역을 개척한 동인도회사였다. 선발주자인 네덜란드와의 협력에 이어 18세기 중반 경쟁자인 프랑스를 군사력으로 제압한 영국은 인도를 장악했다. 이후 인도는 200년 동안 영국의 '왕관 가운데 박힌 보석'으로 무역의 거대한 시장이자 군사적·인적 자원의 마르지 않는 보고가 됐다.
그러나 정복과 무역만으로 영제국이 이룩된 것은 아니었다. 약 300년 동안 영국을 떠나 전세계의 식민지로 간 사람은 2000만 명이 넘었다. 종교적·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된 대량이민은 북아메리카의 뉴잉글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백색 역병'(white plague)처럼 퍼져나가 영제국의 토대가 됐다. 또 하나, 제국 건설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것은 세계의 '구원'과 '문명화'를 사명으로 여기는 선교적 열정이었다. 복음주의적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은 아프리카의 탐험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이었다.
영제국은 19세기에 절정기를 맞이했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전신·증기선·철도 같은 산업혁명의 성과물들이었다. 이런 첨단 기술 덕분에 세계는 축소됐고, 영제국의 결합도는 높아졌다. 1866년 아프리카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황제가 영국인들을 감금했을 때 영국은 인도에 있는 군대를 동원해 인질들을 구출했다.
영제국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19세기 막바지에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아프리카 쟁탈전'이었다. 1880년부터 20년 동안 1만개의 아프리카 부족 왕국들을 마흔 개의 국가들로 재편한 이 치열한 각축전에서 영국은 세실 로즈·조지 골디 등의 활약으로 카이로에서 케이프까지 아프리카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했다. 이들의 뒤에는 분당 500발을 발사하는 최신식 맥심 총과 자본이 있었다.
그러나 영제국은 20세기 들어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 원인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다른 '대안적' 제국들과의 전쟁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승리했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파산했고, 결국 영제국은 급속한 해체 과정을 거친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영제국은 세계사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가? 이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물론 그는 영국이 제국의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노예무역, 무력탄압, 서양문명의 강요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영제국 시대의 산물"이라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의회 민주주의 등이 영제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현재 세계에서 제국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을 꼽으며, 영제국의 경험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책은 최근 몇 년간 미국 대외정책을 좌우한 네오콘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피를 덜 흘리며 근대성에 이르는 길은 없었다"고 암시한 그가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네오콘이 퇴조하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