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무중력 상태’는 고교 교과과정에 나오는 과학 개념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오해되고 있는 사례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대 심층면접에 3년 연속 출제되었는데 당시 정확히 대답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 논술 논제로서는 ‘운동의 상대성’을 힘 개념과 결부시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주제이다. 무중력 상태를 ‘가상적인 힘’인 관성력 또는 원심력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통속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상시에 우리는 중력과 수직항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구가 우리 몸을 당기는 ‘중력’으로 인해 발로 바닥을 ‘누르는 힘’이 발생한다. 그러면 이 누르는 힘의 반작용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곧 ‘수직항력’이다. 우리 몸은 아래쪽 방향의 중력과 위쪽 방향의 수직항력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몸이 위아래로 ‘짜부러지는’ 상태에 있게 된다. 그 증거로 하루종일 서거나 앉아서 생활하면 척추의 연골조직(디스크)이 눌려서, 아침보다 저녁에 키가 작아진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유낙하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지구상에서는 공기저항 때문에 분석이 복잡해지는데, 편의상 공기 저항을 무시하거나 또는 공기 저항이 없는 달 같은 곳에서 자유낙하를 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바닥을 누르는 힘이 없기 때문에 그 반작용인 수직항력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몸에는 오로지 중력만 작용하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끈이 끊겨 자유낙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자유낙하운동의 특성상 어떠한 물체든 똑같은 가속도(중력가속도)를 가지게 되므로, ‘엘리베이터 바닥면’과 ‘사람의 몸’이 똑같은 운동을 하게 되어 매 순간순간마다 서로 완벽하게 동일한 속력을 나타내게 된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발을 구르거나 해서 엘리베이터의 바닥면을 누를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바닥면을 꾹 누르는 일은 불가능해지고, ‘누르는 힘’이 없으므로 그 반작용인 수직항력도 없다.

결국 우리 몸에는 오로지 중력만 작용하게 되고, 그래서 짜부러지는 느낌이 없어진다. 이 상태를 무중력상태라고 한다. 이런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놀이공원에 가서 ‘자이로드롭’ 또는 ‘번지드롭’이라고 불리는 장치를 타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기는 하지만 중력가속도와 동일한 가속도로 의자가 낙하를 하면 몸이 의자 바닥면을 ‘누르는 힘’이 0이 되고 이로 인해 수직항력도 0이 된다. 그러면 우리 몸에는 오로지 중력만 작용하게 된다. 이 상태가 곧 무중력상태이다. 결국, 무중력상태란 역설적이게도 ‘중력만 작용하는 상태’이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을까? ‘무중력상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we ightless state’이다. weight는 흔히 ‘무게’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대개의 경우 무게(weight)와 중력(gravity)은 동의어로 취급되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두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통상적으로 체중계를 이용하여 측정하는 것은 ‘중력’ 자체가 아니라 바닥을 ‘누르는 힘’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에는 중력과 무게(누르는 힘)는 그 크기가 서로 같기 때문에 동의어처럼 사용해도 되지만, 지금은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줘야 한다. 즉 weightless state는 weight(즉 무게=누르는 힘)이 없는 상태이고, 당연히 그 반작용인 수직항력 또한 없는 상태이다. 이를 중력(gravity)이 없다는 식으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애초에 일본인이 서구어를 한자어로 번역할 때 실수하였던 것을 우리가 계속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중력상태에 대한 통속적 설명은, 중력이 원심력이나 관성력과 평형을 이뤄서 합력이 0인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성력과 원심력은 실제로 작용하지는 않는 가상적인 힘(또는 가짜힘)이므로, 이러한 설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