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는 전공 교수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한국 청소년들이 즐겨 읽더군요. 이 얘기를 접한 독일 친구들은 ‘매우 놀랍다’ 아니 ‘무섭다’고 합니다.”

헤세의 6촌 손녀인 중앙대 독문과 유(柳)군더트 이름가르트(65·Yu-Gundert Irmgard) 교수가 내년 2월 정년 퇴임한다. 같은 과 명예교수인 남편 유형식(柳亨植·66)씨를 따라 1984년 한국에 온 지 22년 만이다. 헤세의 사촌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할아버지 빌헬름 군더트를 따라 헤세, 그리고 그의 부인 니농 헤세와 교감을 나눴던 유군더트 교수는 헤세의 ‘핏줄’ 중 유일하게 그의 문학을 연구한 ‘가족 대표’로 꼽힌다.

과천 별양동 자택에서 18일 그를 만나 헤세에 대한 추억과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그는 “학생들 성적 내고 크리스마스 카드 쓰느라 바빠서 직접 케이크를 만들지 못했다”며 비엔나 커피와 함께 “빵집 케이크보다 훨씬 맛있다”는 붕어빵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청소년들이 독일 학생들보다 훨씬 ‘헤세의 정신세계’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독일서는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문학작품을 주로 읽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인간의 내면을 다룬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불교와 도교에 심취해 있던 헤세의 정신세계를 한국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독일 청소년은 머리로 이해하려다 보니 오히려 어렵게 느낀다고 보았다. 그는 그러나 “10대가 이 소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한 번 읽었다고 제쳐두지 말고 성인이 된 후 반드시 다시 챙겨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년 넘게 가르친 한국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독일 학생과 완전히 다르다”며 “수업시간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들”이라고 평했다. 교수를 눈앞에서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독일 학생과 달리 한국 학생은 ‘누가 답 좀 말해주세요’라는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전과 대조되는 한국의 절과 ‘한국의 아름다운 햇빛’을 좋아한다는 유군더트 교수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한국의 오래된 예술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가장 좋아하는 절로는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를 꼽았다. “그리스 신전이 석조 건물의 전형이라면 한국의 절은 나무 건물의 구성과 맵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절을 찾을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종교를 느낄 수 있어 깊은 감동을 받곤 합니다.”

은퇴 후에는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며 “한국의 절을 찾아다니고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 두 딸도 방문하는 등 벌써부터 계획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