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원

1967년 스물여섯 살 추상화가가 행위예술, 설치미술하는 동료들과 함께 서울 덕수궁에서 경복궁까지 행진했다. 피켓에 적은 시위 구호는 ‘이것도 그림이다.’ “우리가 데모한 기사가 신문에 났는데, 제목이 ‘이것도 그림이냐’ 였어요. 핫하!” 서승원(徐承元·65) 홍익대 미대 교수가 찻물을 끓이다 말고 웃었다.

청년시절 그는 전위였다. 63년 기하학적 추상을 도입하고, 67년 동배(同輩)들을 규합해 ‘청년작가 연립전’을 열었다.

지금 그는 주류(主流)이며 원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그림이 걸린 지 24년이 됐다. 다음달엔 30년 넘게 몸 담은 홍대에서 정년 퇴임한다. 40여년을 그려온 그림 중 딱 30점을 자선(自選)해서 보여주는 개인전을 오는 12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연다. 서교동 화실에서 그는 이 전시회에 걸 그림을 고르고 있었다. “결산인가요?”하자 그는 ‘아’ 음절에 힘을 줘서 “아니에요” 했다.

“지금까지 해 온 걸 쭉 보여주는 자리는 맞습니다. 그렇지만 나 아직 결산 아니에요.”

전시회엔 빨강·파랑 등 원색을 써서 네모·세모·직선으로 화면을 구획한 60년대 작품, 백색을 주조로 한 70~80년대 작품, 날카로운 직선과 명료한 형태를 벗어버린 90년대 이후 작품이 두루 걸린다. 지난해 그린 ‘동시성 06-1118’에선 경계가 뭉개진 색채 덩어리가 화면에 부유한다. 빛이 스민 듯 맑고 차분한 느낌.

그는 창고처럼 쌀쌀한 화실에 전기 난로를 켜놓고 녹차를 마시다 “일생, 돈이 없어도 꽃 그림 그린 적 없다”고 했다. 팔리려고 애쓴 적 없다는 자부다. 그는 평생 ‘동시성’이라는 한가지 주제로 5000점 넘게 유화를 그렸다. “그림 그리는 사람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것이 동시성”이라고 큐레이터 이지영씨는 설명했다.

그가 선(禪)에 가까운 개념을 추구하며 외길을 가는 동안, 화실 밖에선 온갖 풍조가 융성하고 스러졌다. 그가 주도한 70~80년대 추상미술에 대해 젊은 평론가들은 비판적이다. 가령 박영택(朴榮澤·43) 경기대 교수는 “서 교수 등의 작업은 한국적 모더니즘을 세우려는, 필요한 노력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강해져서 그들처럼 그려야만 현대 미술인 것처럼 절대화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앞선 세대에 도전한 것처럼 자신이 다음 세대가 넘어야 할 산이 됐다는 이런 지적에 대해 서 교수는 “그야 얼마든지!” 하고 두 팔을 좍 폈다. ‘서승원전’은 28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02) 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