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극동 블라고베셴스크 시의 ‘타르고비 첸트르(유통마트)’에서 일하는 올가(Olga·21)의 꿈은 빨리 돈을 모아 모스크바로 가는 것이다. 작년에 모스크바로 떠났던 친구 나스차(Nastya)가 “여기선 너같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애는 월급이 1000달러”라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아무르 국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올가의 지금 월급은 7200루블(277달러). 나스차가 받는 월급의 4분의1이다. 올가는 “극동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젊은이들이 살기엔 너무 변화가 없고 삶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했다.
면적이 러시아 전체의 36%인 극동에서 러시아인들이 떠나간다. 현재 이곳 인구는 전체 1억4200만명 중 650만명(4.58%). 1991년엔 799만5000명이었다. 15년 새 한국의 충청북도(150만명)만한 인구가 사라졌다. 유엔 인구보고서는 러시아 극동 인구가 2025년 47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대통령은 작년 12월 안보회의 때 “극동의 인구감소 같은 만성적 문제가 러시아 안보의 실질적 위협”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러시아인들이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모스크바와 비교했을 때 현격히 떨어지는 소득 탓이다. 모스크바 시민 1인당 평균 월급은 1040달러인데 반해, 블라고베셴스크 시민은 300달러다. 시내 레닌 거리에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는 비체슬라프는 “지금도 모스크바로부터 단절된 섬같이 느껴지는데, 아마 100년 뒤엔 ‘무인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은 최근 극동에 1000억 루블(3조8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11일엔 로만 아브라모비치(Abramovich) 등 러시아 최대 재벌들이 극동 개발 프로젝트에 1004억달러를 투입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극동 문제는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크라스노-아르메이스카야 거리 1000평 규모의 첸트랄니 르이녹(중앙시장). 4월 1일부터 러시아가 자국 소매시장에서 외국인 영업을 전면 금지했는데도, 중국인 상인이 많이 눈에 띄었다. 상인 예카테리나(Ekaterina)는 “버젓이 ‘시장’인 이곳을 4·1 소매시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유통마트(타르고비 첸트르)’로 행정당국이 이름을 바꿔놓은 탓”이라며, “결국 중국 상인들은 뇌물을 주고 점포 수를 불법으로 늘려 상권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2시, 블라고베셴스크와 중국 헤이허(黑河) 사이를 흐르는 폭 500m의 아무르 강변을 오가는 24인승 공기부양정 2척이 도착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과 중국인들은 서로 배를 가려서 탔다. 강을 건너는 5분 동안에도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만은 중국어 인사 ‘니하오(안녕하세요)’가 결코 인사만은 아니다. 일부 러시아인은 중국인에게 ‘니하오’ 한 뒤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곳 상주 중국인은 벌써 2만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