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고 수혈 치료를 받고 있는 김 모씨(42)는 지속적인 반복 수혈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혈이 반복되면서 체내에 축적되는 철분이 문제가 됐다.

심장 근육에 철(Fe)성분이 많이 쌓여 심부전이 진행되고 있는 진단을 받은 것. 수혈을 받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혈액에 포함돼 있는 철분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장기에 쌓이는 ‘철 중독증’을 얻은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철의 독성이 발현돼 심장과 간에 치명적인 부담을 주는가 하면 췌장의 베타세포를 파괴해 당뇨병을 부르기도 한다고 전문의들은 진단한다.

수혈로 인한 철중독증은 하루 8시간씩 정맥 주사를 맞는 방법으로 5∼6일을 꼬박 투자해야 고칠 수 있는 병이다.

수시로 수혈을 해야 하는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들 중에는 철 중독증 치료를 포기하다 간경화와 심부전증 등의 합병증을 얻은 사례도 있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수년간 특별한 이상이 없다가 피로감을 느껴 검사해보면 체내 철분 축척치가 정상 수준의 훨씬 웃도는 결과가 나온다. 최고 정상치의 8배가 넘기도 한다.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합병증을 유발하는 지름길이라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골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 전까지 수혈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 만성 혈액질환자들 사이에 철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이 빈발하고 있다.

그러나 합병증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철은 체내에서 산소를 운반하고 미토콘드리아의 호흡을 도우며 유해산소의 체내 활동을 억제하는 등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 정상 성인 여성의 경우 체중 1㎏당 40㎎, 남자는 50㎎의 철이 필요하다.

주로 음식물로 섭취되는 철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을 생성한다. 음식물로 하루 평균 1∼2㎎(달걀 노른자 반 정도 분량)이 몸에 흡수된다. 이들은 철 운반 단백질인 트랜스페린과 결합해 골수, 근육 같은 기관에 전달된다.

제 역할을 다한 철은 체내 순환 과정을 거쳐 하루 1㎎ 정도씩 대변과 소변, 머리카락, 피부, 월경 등을 통해 배출된다. 정상적인 생활에서는 음식물로 섭취된 철과 소실되는 철의 양이 균형을 유지되기 마련.

문제는 만성 혈액질환자들처럼 치료를 위해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을 받아야 하는 경우다. 수혈팩 1개엔 200∼250㎎의 철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처럼 많은 철분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반복적인 수혈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철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장기에 쌓이게 된다.

체외로 배출되지 못한 철은 심장・간・췌장・갑상선・생식기 등에 축적돼 생명에 위협을 주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간이 굳어지는 간경화와 심장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심부전이 가장 흔한 부작용.

췌장에 철이 쌓이면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가 파괴돼 당뇨병이 생길 수 있으며, 뇌하수체에 쌓이면 생식기능이 떨어져 성장 장애나 불임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정기적으로 수혈 받고 있는 사람 중 간헐적인 통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철중독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철 수치’를 체크해야 한다. 보통 10∼20회의 수혈을 받거나, 혈중 철 농도가 1000㎍/ℓ에 이르면 철중독증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 중독증이 의심되면 체내에 과잉 축적된 철분을 인위적으로 빼내는 치료가 필요하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으로는 킬레이트 요법이 있다. 아미노산 복합체를 체내에 주사해 철을 흡수ㆍ배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하루 8∼12시간씩 5∼6일 동안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달 초 국내 출시된 ‘엑스자이드(노바티스)’란 약물은 하루 한차례 물이나 오렌지 주스에 타서 마시면 되는 방법으로 기존의 정맥주사를 맞는 불편을 해소,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에 시판되는 철해독제인 '데스페랄'은 거의 매일 점적주입하며 한번 펌프로 점적 주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대 8-12시간이다.

이에 비해 엑스제이드는 디페라시록스 성분으로 하루에 한번 물과 함께 경구로 복용하는 용법이어서 편리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윤성수 교수는 “국내에는 현재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 2000여명, 재생불량성 빈혈을 포함한 희귀 빈혈 환자 7000명 등 약 9000여명의 만성 혈액질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들은 대부분 골수 이식을 하기 전까지 수혈 치료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철 중독증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