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꼴 모양의 나무 형틀에 사람이 엎드려 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는 묶여있고, 엉덩이 부분은 옷을 벗겨 맨 살이 드러나 있다. 그 옆에서 건장한 교도관이 온 힘을 다해 굵은 나무 회초리를 내려친다. 비명소리와 함께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른다.’

끔찍한 고통으로 악명 높은 싱가포르의 태형(笞刑) 장면이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태형이 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법원이 한 청년에게 당초 선고한 양보다 많은 태형을 집행하는 실수를 저지르자, 피해자 부모가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선진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싱가포르에 왜 이렇게 '구시대적 형벌'인 태형이 남아있을까. 태형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어떨까.

올해 20세의 딕슨 탄이란 청년은 불법대출 교사(敎唆) 혐의로 지난 3월 지방법원으로부터 9개월의 징역과 5대의 태형을 선고 받았다. 문제는 법원 직원이 판결문을 쓰면서 실수로 "5대의 태형'을 '8대의 태형'이라고 적었다. 지방법원 판사도 서명을 하면서 직원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3월29일 탄은 나무 회초리로 8대를 맞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탄의 부모는 정부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다. 부모는 "교도소 직원들이 아들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묵살하였다"면서 잘못 집행된 3대의 태형에 대해 ▲정부의 사죄 ▲300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18억2000만원)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탄의 부모는 "만약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외국의 사례를 근거로 보상 액수를 높일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현재 양측 간에 협상이 진행중인 가운데 싱가포르 법무부는 담당 판사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싱가포르의 '태형'은 이전에도 한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1994년 미국 청년 마이클 페이(Fay) 사건 때문이다.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살던 페이(당시 18세)는 그 해 3월 싱가포르에 여행 갔다가 열흘 동안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다가 체포됐다. 법원은 페이에게 6대의 태형과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태형에 대해 '구시대적 형벌'이라며 여론이 들끓었고,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싱가포르 법원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6대를 4대로 감형한 뒤 태형을 집행했다. 매를 맞은 페이는 엉덩이가 피범벅이 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태형은 동서를 막론하고 형벌의 하나로 널리 사용돼 왔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큰 곤봉으로 치는 것을 장형(杖刑), 작은 회초리로 치는 것을 태형(笞刑)이라고 하여 19세기말까지 집행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19세기말~20세기 초반까지 태형이 존재했다. 20세기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고문’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태형은 21세기인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만 남아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따르면,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수마트라의 아체지역)에, 아프리카에서는 보츠와나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스와질랜드 짐바브웨 등에 태형이 남아 있다.

싱가포르는 영국 통치 시절 식민지 사법체계의 하나로 태형을 도입했다. 독립 이후에도 이슬람교의 영향과 엄격한 법질서를 선호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태형이 존속됐다. 싱가포르 국민의 다수도 태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94년 봄 미국 USA투데이가 마이클 페이 사건을 계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만약 미국이 싱가포르처럼 엄격한 법률을 도입했으면 지금처럼 사회문제가 많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싱가포르가 태형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포를 통한 범죄 예방효과’다. 어떻게 형을 집행하기에 그토록 공포를 주는 것일까. 태형에 사용되는 회초리는 굵기 1.27㎝에 길이 1.2m의 등나무이다. 교도소 측은 형 집행 전에 회초리를 유연하고 갈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에 담그며, 방부제 처리를 한다. 소금물에 적신다는 소문이 있지만, 싱가포르 범죄국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태형의 대상과 적용범죄는 법률에 엄격히 정해져 있다. 우선 태형의 대상은 16~50세의 남자다. 여자와 어린이(16세 미만), 노인, 그리고 사형수는 제외된다. 또 의사에 의해 건강상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태형의 횟수는 성인은 최대 24대, 청소년은 최대 10대까지다. 태형은 단독으로 선고되지 않고, 반드시 징역형이나 기타 다른 형벌과 함께 내려진다.

태형을 받는 죄수는 척추와 신장 생식기 등을 다치지 않도록 허리 부분에 두꺼운 복대를 두른다. 집행 현장에는 의사가 입회하여 매회 태형이 집행된 뒤 상처부위를 살핀다. 형은 2~3명의 교도관이 입회한 가운데 특별히 훈련된 간수가 집행한다. 몸집이 큰 집행 간수들은 30초 간격으로 한대씩 때리는데, 옆에서 도움닫기 방식으로 달려들며 체중을 실어 힘껏 내려친다.

과거 한국의 군대에서 행해졌던 소위 ‘빠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가해지는 것이다. 맨 살에 단단한 등나무 회초리가 파고들면서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며, 횟수가 거듭되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건장한 남성도 한 대만 맞으면 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 집행 직후 의사가 응급치료를 하지만 평생 흉터가 남는 것은 물론, 정신적 후유증이 극심해 성기능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제엠네스티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형벌”이라며 싱가포르에 태형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태형의 적용 범죄는 ▲불법입국과 불법체류(태형 3대 이상) ▲무기나 탄약 소지 혹은 전달(6대 이상) ▲밀수(12대 이상) ▲강간(12대 이상) ▲기물파손(3~12대) ▲절도(6~12대) 등이며, ▲마약거래 ▲동성애 ▲비행기 납치 ▲폭발물 소지 ▲살인미수 ▲폭력 등도 해당한다. 태형 적용 범죄는 각종 경제범죄의 증가에 따라 늘어나고 있다. 또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태형 집행 횟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1987년 602건이었던 태형 집행은 1993년 3244건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그 이후 통계는 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2004년 ‘불법입국’으로 적발된 인원만 1만1790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범죄 예방효과’라는 태형 존속 명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2006년)로 꼽힌 싱가포르와 ‘태형’의 공존. 둘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