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서구 제국주의의 합리화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이 말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에서 서문을 여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말이다. 여기서 ‘그들’이라 함은 동양인을 가리킨다.
인류의 평등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주장했던 칼 마르크스조차 동양은 자기 스스로를 재현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지 못한 열등한 존재라고 정의 내렸다. 서양인의 오만한 사고방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민족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동양은 항상 서양이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양은 ‘민주주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종의 전제정치와 독재자, 폭군의 강압적인 정치제도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온 비민주적인 군주국가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서양이 그들을 구원해주고 재현해주어야 하는 일종의 의무와 사명이 주어졌다고 확신했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러한 인식은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양을 식민지로 개척해나가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근거가 되었다. 동양은 폭군의 땅이었기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서양이 그들을 폭군에게서 해방시켜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소명감에 불타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초 이른바 ‘밸푸어 선언’으로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영국의 정치가 밸푸어는 “동양인들의 역사 전체를 보면 그곳에서는 자치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들의 위대한 여러 세기는 전제주의와 절대정부의 통치하에서 지나갔다. 동양은 이제 우리의 통치로 인해 지금껏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우수한 정부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서양문명 전체에 대해서도 이익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동양을 야만적인 폭군의 땅으로 그린 낭만주의자들
이렇게 서양의 동양에 대한 우월의식은 그들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다. 더 나아가 동양은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낭만주의자들의 격한 붓놀림 속에도 이런 우월의식이 녹아들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알제리 합병 등이 있었던 19세기 초부터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이른바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의 ‘동방 취향’이 크게 유행했다. 특히 외젠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 1798~1863)는 알제리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상당시간을 체류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동양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Baron Byron, 1788~1824)의 시극 ‘아시리아 왕 사르다나팔루스’에 감동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사르다나팔루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거벗은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들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화폭 가득 담겨있다.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는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성이 함락당할 위기에 놓이자 부하들에게 자신의 궁전에 장작을 쌓게 했다. 그 자리에 자신의 온갖 보물을 갖다 놓게 하고 후궁들과 노예, 말과 개, 그리고 충복들을 집합시켰다. 그러고는 처참한 살육의 향연을 벌인 뒤 불을 붙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불태워버렸다.
이 잔인하고 끔찍한 살육의 장면을 들라크루아는 붉은 색과 검은 색의 강렬한 색채와 인물들의 격렬한 몸부림으로 표현하였다. 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 이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보고 즐기고 있는 사르다나팔루스의 냉담한 시선까지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양의 잔인함과 성적인 신경증을 표현한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동양의 왕은 비민주적이며 잔인하고 미개하다는 통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모두가 서구 유럽 중심의 역사관의 반영이다. 이와 같은 시극을 쓴 바이런이나 그림을 그린 들라크루아나 역시 그러한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