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기자]우리나라 프로 경기는 전두환 정부 시절, 정권 안보 차원에서 태어났다. 물론 시대적인 흐름과 요청이 없었더라면, 그나마 태동하기도 힘들었겠지만 일정 부분 치자의 방편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가 척박한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숙한 것은 정권의 이해와 맞물려 구단의 모기업 오너의 의중에 좌우된 것 또한 사실이다. 프로야구단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오너들만의 모임인 구단주 회의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야구계의 현안과 진로를 큰 틀에서 논의해야할 구단주 총회(대리인 참석은 논외로 치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협소한 야구 산업에 대한 그룹 오너들의 관심이 엷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LG 그룹 구본무 회장의 행보는 언제나 눈길을 끌어왔다. 구 회장은 어떤 구단의 오너보다도 야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 그룹이 야구단 운영에 뛰어든 것은 1990년부터. 그 해 1월18일, 인기구단이었던 MBC 청룡을 인수해 18년 동안 야구단을 이끌어오면서 구 회장은 매년 ‘단목행사’를 열어 선수단을 직접 챙기고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단목행사’는 구 회장의 생가이자 외가가 있는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지내는 우승 기원 행사를 일컫는다.
이 단목행사가 2000년 ‘선수협 파동’ 이후 시나브로 사라졌다. 항간에선 구 회장이 야구단에 대한 관심이 식어 행사를 열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구 회장은 2006년 시즌을 앞두고 당시 이순철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식사를 같이한 데 이어 올해는 시즌 전 김재박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전원을 이례적으로 한남동 자택으로 불러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당초 김재박 감독이 LG 사령탑 물망에 올랐을 때 ‘구본무 구단주가 과연 그를 낙점할까’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1992년 김재박 감독이 LG에서 태평양으로 이적할 당시 구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점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않겠느냐는 억측이 나돌았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김영수 LG 트윈스 사장이 1순위로 올린 ‘김재박 감독’안에 구 회장은 흔쾌히 서명했다.
‘성골 LG맨’인 김재박 감독이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다잡고 명문구단으로 도약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구 회장은 야구장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올해도 단 한 번 잠실구장에 나왔다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되돌아갔다. 그 경기에서 LG가 역전승을 거두었다는 보고를 받고 구 회장이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매일 비서를 통해 LG의 경기결과를 보고 받는다. 김영수 사장이 그룹에 들어갈 때면 ‘팀의 역전승, 역전패’기록을 챙겨가야할 정도로 구 회장의 야구단에 관심은 식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야구장에 자주 가고 싶지만, 갈 때마다 자주 지는 바람에 일부러 꺼려한다는 얘기도 있다.
LG 트윈스는 올 시즌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건너간 마당이다. 하지만, 9월11일 현재 관중 동원면에서 LG는 8개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86만8274명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1만4717명(59게임)으로 1만5000명에 약간 못미친다. 이는 1997년 이후 10년만에 가장 많은 수치이다.
‘김재박 특수 효과’를 누린 것이다. 만약 성적이 조금만 더 뒷받침 됐더라면 100만 명 돌파도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해 팀성적 최하위였던 LG 구단이 이처럼 성적과 관중, 두 마리 토끼를 쫓아 ‘의미 있는 상승과 성과’를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2% 부족한 것이 있다. 김영수 사장은 그 2% 부족한 점이 ‘근성’이라고 진단했다. 올 시즌 이유 있는 실험을 거친 LG의 ‘김재박 호’의 내년 시즌 항해와 탈바꿈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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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삼성 PAVV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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