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웅 중앙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70)는 고교 시절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였다. 하룻밤 동안 써 내려간 원고를 3학년 문예부장 선배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선배는 그의 원고에 온통 새빨간 줄을 그어 돌려줬다. 자세히 보니 딱딱한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고,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고쳐놓은 것이었다. 신 교수는 “당시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 대신 손에 만져질 것 같은 구체적인 표현을 쓰라는 선배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말과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한 글보다 정확한 어휘로 꾸밈없이 정직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뜻이다. 아름답기만 한 글은 힘이 없다. 솜사탕 같이 달콤하기만 한 글은 자칫 주제를 흐트러뜨릴 수도 있다. 신 교수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뼈만 추려서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 게 중요하다”며 “핵심만 담아 군더더기가 없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강조했다.
애매한 표현과 수동형 문장 피해야
요즘 TV를 보면 이런 식의 표현이 자주 나온다.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 제품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이와 같은 '~한 것 같다'는 애매한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자주 보인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려는 한국 사람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이다. 하지만 이런 문장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신 교수는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자기가 확신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표현"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막연한 문장으로는 절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글쓰기, 특히 논술에서는 '~한 것 같다'는 문장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말 습관에서 먼저 '같아요'를 버려야 한다. '글'은 '말'을 종이 위에 옮긴 것이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대신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습관을 갖는다.
‘~되다’와 같은 수동형 표현도 가급적 없애야 한다. 우리말에는 원래 수동형 표현이 없었다. 영어 등 외국어가 들어오면서 수동형 표현이 생겼다. 요즘에는 ‘~되다’는 수동표현으로도 모자라 ‘~되어지다’라는 이중수동 표현까지 자주 쓰인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은 탄력근무제 도입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보다는 “직장인 10명 중 8명은 탄력근무제 도입을 원한다고 밝혔다”는 문장이 훨씬 간결하고 분명하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수동형 문장은 읽기에 거추장스럽고 의미 전달을 방해한다. 자신이 쓴 글에서 ‘~되다’는 수동형 문장을 찾아 ‘~하다’라는 능동형 문장으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학생들, 인스턴트식 사고 버려야
신 교수는 중앙대 입시에서 논술출제위원과 논술출제위원장을 여러 차례 맡았다. 그는 “요즘 학생들의 글은 개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생들의 글이 전부 비슷비슷해서 모두 기본 60점을 주고, 특별히 뛰어난 글에만 90점을 주어 두드러지게 한다는 원칙을 정한 적도 있었다. 때로는 맞춤법, 글씨체 등을 보고 가산점을 주기도 했다. 신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논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고력”이라고 강조한 뒤 “글 쓰는 기술은 그 다음에 가르쳐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게으른 사람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그래서 신 교수는 학생들에게 “할 일이 없어도 밖으로 나가라.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라. 하다못해 간판이라도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이 보인다. 몸과 마음이 편한 여행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무전여행을 떠나라”고 권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색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가 보기에 요즘 학생들의 사고는 ‘인스턴트 식’이다. 하나를 깊이 생각하기보다 단편적인 것만 보고 순간의 즐거움만 생각한다. 그는 “책보다 동영상과 게임에 익숙한 청소년일수록 사고력이 부족하다”며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고 시에는 과감하게 버려야
신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생각을 오래 하고, 글은 단숨에 쓰라”고 지도한다. 무턱대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글을 쓰는 목적,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독자에게 이해시킬 것인가’를 깊이 고민한다. 머릿속에서 한 편의 글이 구성될 때까지 충분히 생각하고, 완전히 구성됐을 때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쓸 때는 절대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어떤 글이 나오든지 일단 끝까지 단숨에 써내려간다. 완성 후 일단 덮어두었다가 글을 쓸 때의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야 비로소 글을 되돌아보며 퇴고에 들어간다.
퇴고는 ‘과감하게 버리는’ 작업이다. 자기가 쓴 글이 아무리 아까워도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지워야 한다. 마지막에 붙인 쓸데없는 사족이 글 전체를 망친다. 신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월색(月色)’을 주제로 빼어난 글을 써 ‘장원 감’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나 글 마지막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이야기를 덧붙이는 바람에 그는 장원을 놓쳤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학생이라면 퇴고 시 자신의 글을 손으로 베껴 써 본다. 신 교수는 “컴퓨터로 쓴 글을 출력하면 포맷이 그럴 듯해서 아주 잘 쓴 글처럼 보인다”며 “컴퓨터로 쓴 글이 어떤지 알고 싶으면 필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직접 펜으로 써보면서 읽기에 거슬리거나 부정확한 문장, 쓸데없는 미사여구 등을 고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