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화가 조영남(62)이 첫사랑부터 두번의 결혼과 이혼까지 평생의 걸친 자신의 사랑편력을 그대로 드러낸 책 '어느날 사랑이'(한길사)를 출간했다.
 
지난 2005년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 출간으로 거센 논란을 일으켰던 조영남은 이 책을 통해 첫사랑과의 섹스와 결혼 생활 중 외도 등 스타로서는 꺼내기 어려운 사생활까지 파격적으로 공개했다.

조영남은 첫번째 부인 윤여정과 이혼한 이유는 자신의 바람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조영남은 배우 윤여정과 20대 초중반 첫 만남 이후 6년여간 친구처럼 지내다 1975년 미국 시카고에서 결혼했다.

그는 윤여정에 대해 “초등학교시절부터 최우등생으로 민관식 교육부장관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전형적인 수재”라며 “살짝 나탈리 우드를 닮은 윤여정은 매사에 철저하고 억척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누구의 부축없이도 잘 걸어가는 신비스러운 강인함이 선천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조영남은 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뒤 두번의 바람때문에 이혼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연습바람 한 번 본격바람 한 번,딱 두차례의 바람으로 잘 쌓아온 나의 가정과 평판이 깡그리 날아갔다”며 “두번째 바람은 허리케인보다 더 무서운 쓰나미였다”고 적었다.

조영남은 친구 소개로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던 한 여성과의 첫번째 바람 이후 ‘아름다움과 청초함 때문에 정녕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던’ 여대생과의 본격적인 바람이 아내 윤여정에게 들통이나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그는 또 한양음대 재학시절 약혼자가 있던 첫사랑과 사귄 것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사연과 그녀와의 섹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조영남은 “내가 나의 동정을 야매나 비공식이 아닌 공식적 식순에 따라 헌납한 곳은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의 골목길에 자리잡은 삼류여관방이었다. 딱지는 청계천 창녀에게 떼이고, 동정은 첫사랑에게 바쳤다. 교과서대로 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섹스가 개입되기 전의 사랑’이라고 규정한 풋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시인 강은교가 그의 세번째 풋사랑이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조영남은 자신을 카사노바의 머리와 베르테르의 몸을 합성시킨 신종인간‘카사테르’라고 규정했다.

조영남은 “카사노바와 베르테르는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서로 판이하게 살아갔다.여자를 죽도록 사랑했다는 점에서는 둘 다 비슷하다”면서 “나는 지금 갈피를 못 잡고 있다.왜냐하면 나는 카사노바도 지지하고 베르테르도 지지하기 때문이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두사람 다 나의 영웅이다”고 했다.

그러나 조영남이 이 책에서 자신의 여성편력만 적은 것은 아니다. 그는 남자친구와의 우정,신에 대한 사랑,가족애 등 총체적인 사랑론을 펼친다.

조영남은 40년 가까이 사귀어온 이장희,김민기,마종기,송창식과 같은 남자친구들의 우정이나 의리도 당당히 사랑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소설가 이윤기와 밤새 쫓아오는 새벽을 저주하며 쓸모 있는 말만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되묻는다.

고등학생인 딸에 대해서는 “내 딸은 나의 스승이며,은인이다.나는 내딸이 아니었으면 내게 있어서 사랑이라는게 진짜 존재하는 건지를 확인못하고 엄벙덤벙 짧은 생애를 마감할 뻔했다.그걸 내 딸의 존재 때문에 사랑의 있고 없음과 사랑의 형태까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 적었다.

한때 신학도였던 조영남은 “진리가 사랑이라고 말한 예수는 서른두셋일 대 그 말을 하고 죽었다. 내가 찾던 진리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나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줄 수 있는 마음,이웃을 진짜로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그것이 바로 진리였다.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