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프로구단에서 노장 선수들은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연 기량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놓고 연봉 계약이나 FA 영입에 있어 고민을 거듭한다. 나이는 연봉과 FA 영입에 있어 중요한 잣대다. 일종의 나이 논리다.

하지만 실력만이 인정받는 프로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실력이지 나이가 아니다. 노장들의 분전이 젊은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한다는 것은 오래된 교훈이며 팬들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요 일종의 영광이다. 삼성의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38)은 우리 나이로 39살, 내년이면 불혹이다. 그러나 그에게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최고령 20-20 달성의 의미

양준혁은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인 지난 5일 사직 롯데전에서 도루 2개를 추가해 최고령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다. 만 38세 4개월 10일. 2003년 KIA 이종범이 기록한 종전 최고령 20-20 기록(33세 28일)을 훌쩍 뛰어넘었다. 비록 이날 경기에서 2타수 1안타에 그쳐 자력으로 타격왕을 확정짓는 데는 실패했지만 개인통산 4번째이자 한국 프로야구 역대 29번째 20-20을 달성함으로써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게 됐다. ‘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SK)과 함께 최다 20-20 기록에 성공한 양준혁은 4년 만에 프로야구의 20-20 명맥을 이었다.

양준혁의 20-20 달성은 타격왕 수상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20-20 달성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아졌다.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에 따른 장타 실종이 첫째 이유이지만 몸을 사리느라 도루를 자주 시도하지 않는 선수들이 많아진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혹을 눈 앞에 둔 양준혁은 나이를 잊고 적극적으로 치고 달리며 20-20을 달성, 프로 마인드가 결여돼 있는 몇몇 후배들에게 큰 의미를 시사했다. 또한, 양준혁의 최고령 20-20은 노장들에 대한 편견과 인식까지 바꿔 놓기에도 충분하다. 나이가 들면 기량이 쇠하고 몸을 사린다는 노장의 이미지에도 신선한 충격을 안긴 것이다.

올 시즌 양준혁의 20-20이 더욱 의미 있는 건 잦은 부상 속에서도 일궈냈다는 점 때문이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막바지에 왼 손목을 다쳐 시즌 초반 타격감을 잡는 데 애를 먹은 양준혁은 지난 5월23일 SK와의 대구 홈경기에서는 실제로 도루를 하다 왼 손등을 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다음날 손등에 붕대를 감고 선발 출장해 도루를 2개나 성공시켰다. 한 번 부상을 당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베이스를 훔친 자세 자체가 귀감이 될 만하다. 게다가 8월17일 잠실 LG전에서도 왼 발목 부상을 입었지만 단 3경기만 결장하고 복귀했고 마지막 2경기에서 3도루를 추가해 기어이 20도루를 채웠다.

▲ 39살 타자의 눈부신 성적표

2007시즌 양준혁의 성적표는 눈부시기 그지없다. 123경기에서 442타수 149안타, 타율 3할3푼7리를 마크했다. 타격 및 최다안타에서 나란히 2위에 올라있다. 2루타는 34개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2홈런·72타점·20도루를 더했다. 홈런은 공동 4위, 타점은 공동 10위다. 타점이 생각보다 적지만 그만큼 양준혁 앞에서 테이블세터진이 밥상을 차려주지 못한 결과다. 삼성 테이블세터진의 출루율은 3할1푼8리로 8개 구단 중 최하위다. 테이블세터진의 출루율이 3할3푼도 되지 않는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대신 4번 심정수가 101타점으로 이 부문 전체 1위에 올라 양준혁 효과를 누렸다. 게다가 양준혁의 72타점에는 13개의 결승타까지 포함돼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타율과 출루율이다. 양준혁은 출루율 4할5푼6리를 기록, 이 부문 2위에 올랐다. 1위 김동주(두산·0.457)와는 불과 1리 차이. 안타를 치고 출루한 것도 많지만, 볼넷으로 걸어 나간 경우도 많았다. 올 시즌 볼넷이 91개로 이 역시 클리프 브룸바(현대·100개)에 이어 2위다. 장타율도 5할6푼3리를 마크하며 이대호(롯데·0.600)에 이어 2위에 랭크됐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에서도 10할1푼9리를 기록, 역시 이대호(1.053) 다음으로 2위다. 양준혁은 이대호와 함께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유이하게 10할대 OPS를 기록할 정도로 생산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인 타자였다.

양준혁의 위대함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준혁은 6월9일 잠실 두산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첫 개인 통산 2000안타의 위업을 달성했다. 양준혁이 그간 가장 애착을 가지고 도전한 기록이 바로 대망의 2000안타였다. 하지만 양준혁은 2000안타라는 대기록 달성 뒤에 오히려 더욱 펄펄 날았다. 6월9일 이후 72경기에서 264타수 95안타, 타율 3할6푼을 기록했다. 목표를 달성한 이후 밀려오는 공허함은 주체하기 힘들다. 매너리즘이라는 수렁도 이 즈음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양준혁은 달랐다. 양준혁에게 야구란 마셔도 마셔도 끝없이 갈증을 일으키는 바닷물과 같은 것이었다.

노장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의 노장은 불행하다. 그러나 존경의 대상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 불행하다. 언제가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선수생활을 마치는 마지막 그날까지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할 양준혁이라는 베테랑 타자가 건재하고 있기에 우리 한국 프로야구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2007 삼성 PAVV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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