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중국 왕하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지 벌써 3년. 그후 긴 슬럼프에 빠져 있던 유승민(삼성생명·세계9위)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주 세계 탁구 ‘빅3’ 이벤트로 꼽히는 월드컵(스페인)에서 마린(2위), 왕리친(3위·이상 중국)을 잇달아 물리치고 결승까지 올랐다. 숙적 왕하오(1위·중국)에게 패해 준우승했지만 베이징을 향한 도전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진화하는 괴물’ 왕하오

17일 귀국한 유승민과 만나 세계 1위 왕하오에 대해 물어봤다. 유승민은 “왕하오는 아테네 올림픽 때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고 단언했다. 왕하오는 펜홀더 라켓 뒷면에 고무판을 붙여 백핸드를 치는 독특한 이면타법 플레이어. 유승민은 “현재 왕하오의 이면타법 백핸드는 유럽 최고의 셰이크핸드 선수보다 더 강하다”며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친다”고 했다. 탁구계의 정설에 따르면 펜홀더는 백핸드에 큰 약점이 있는 전형이다. 팔을 꽈배기처럼 꼬아서 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하오의 펜홀더 이면타법은 이런 통설을 완전히 뒤집을 만큼 강력하다. 유승민은 “마린도, 왕리친도 내가 드라이브로 공격하면 수비에 들어가는데, 왕하오는 오히려 백핸드로 역습을 한다”며 “거의 모든 공이 공격이고, 디펜스는 아예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강문수 삼성생명 감독은 “왕하오는 완전히 똑같은 백핸드 스윙으로 완전히 다른 구질의 공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친다”며 “아테네 때와 비교하면 지금 왕하오의 이면타법은 완성 단계”라고 평했다.

◆베이징이 중국 탁구 무덤 될 수도

그렇다면 내년 베이징올림픽은 물건너 간 걸까? 유승민은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 선수들이 꼭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선수들이 일반 오픈대회처럼 친다면 제 실력으로 절대 못 이기죠. 기술, 정확도, 파괴력에서 당할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중국 선수들도 당황할 수 있어요.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면 자기들은 재기 불능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큰 부담이 있을 거예요. 반면 저는 큰 경기라고 위축되거나 떨려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승부 집중력이 높아지죠. 놓칠 공도 한 개, 두 개 더 받아내게 되고요. 저는 여기에 가능성을 걸고 싶어요.”

◆유승민의 숙제는 뭘까

그에게 “자기 약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너무 많아서 다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유승민이 드라이브 일변도의 펜홀더 스타일로서 백핸드, 수비에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 그러나 유승민은 “이제부터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보다 잘하는 걸 더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 파워 드라이브는 목숨 걸고 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그걸로 올림픽 금메달도 땄고요.”

강문수 감독은 “왕하오와의 경기에 대비하려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선 올해 말까지 체력과 기술훈련을 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베이징 대비 훈련을 시작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