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바밤~ 빠바빠바빠바, 빠빠밤~. 바바바밤, 바바바밤, 바바바밤….”
스페인의 앞 못 보는 기타리스트 호아킨 로드리고(Rodrigo)가 작곡한 아랑훼즈(Aranjuez) 콘체르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KBS 2TV ‘토요 명화’의 오프닝 곡이다. 1981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27년 동안 토요일 밤의 시청자를 TV 앞으로 호출했던 이 멜로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사흘 뒤(11월 3일) 액션 영화 ‘리딕’ 방영을 마지막으로 ‘토요 명화’가 폐지되기 때문. 그 다음주 토요일부터는 ‘KBS 프리미어’라는 이름으로 해외 영화제 출품작 중에서 국내 미 개봉작을 골라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토요 명화’ 폐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영화관람 환경 변화와 시청률 하락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라고 여기는 젊은 세대와 오랫동안 주말 영화 프로그램을 문화와 교양을 받아들이는 창(窓)으로 여겨온 중년 이상 세대의 온도 차이다. 서울에 개봉관이 열 개 남짓하던 시절, 주말마다 신문의 TV프로그램 편성표를 뚫어지게 확인하던 세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 공중파 영화 프로그램의 지위는 거의 몰락 수준이었다. KBS 2TV ‘토요 명화’는 아예 폐지라는 과격한 방식을 선택했지만, MBC ‘주말의 명화’, SBS ‘영화 특급’, KBS 1TV ‘명화 극장’도 처지는 마찬가지. 시청률 조사기관 AGB 닐슨에 따르면 이들 영화프로그램의 최근 시청률은 거의 언급 자체가 민망할 지경이다. 닐슨의 기록이 남아있는 1992년만 해도 16~17%이던 연평균 시청률은 2007년 1~2%의 ‘애국가 시청률’로 곤두박질했다. 광고는 떨어졌고, 방영 시간 역시 자정 이후로 밀렸으며, 그나마도 다른 프로그램에 밀려 ‘이번 주 쉽니다’란 자막을 내보내는 일도 잦았다. 24시간 계속되는 숱한 케이블 영화채널, 클릭 한 번으로 최신영화를 볼 수 있는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의 유혹은 공중파 TV 영화를 박물관 수장고(收藏庫) 속으로 몰아세웠다. 자막을 선호하는 젊은 시청자들이 더빙을 고집하는 이들 영화프로그램을 외면했음은 물론이다. 웬만하면 방송 프로그램별로 홈페이지가 나눠져 있는 요즘, KBS ‘토요 명화’는 자체 홈페이지도 없을 만큼 방송사에서도 천덕꾸러기였다.
‘토요 명화’ 폐지 후 새로 시작하는 ‘KBS 프리미어’가 설 자리 잃은 안방극장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취지는 네덜란드 헝가리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비(非) 할리우드에서 영화제에 출품한 색깔 있는 영화들을 ‘국내 첫 상영’으로 방송하겠다는 것. 제목 그대로 프리미어인 만큼 선도(鮮度)는 훌륭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게 약점이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KBS 영화팀 이관형 PD는 “극장과 TV밖에 없던 30년 전과 지금은 근본적으로 영화를 접하는 방식이 다르다”면서 “비록 토요 명화라는 타이틀은 없어지지만, 시청자와 영화가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