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귀로’, ‘소중한 너’ 등의 노래를 통해 폭발적 가창력을 선보이며, 사랑받았던 가수 박선주(36). 지금은 국내 유명 가수들에게 노래하는 법을 엄하게 가르치는 보컬 트레이너로 더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가 앨범을 발표했다. 5집 ‘드리머(Dreamer)’. 전작(前作)에서 재즈, R&B 등 흑인음악 스타일로 빈틈 없이 꽉 찬 음악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는 간결한 소프트 록을 들고 돌아왔다.
“요즘 록 스타일로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워낙 R&B 가수들이 넘쳐나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쪽 음악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제 앨범을 통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본 셈이죠. 앞으로는 이런 자연스러운 록 음악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 같아요. 정신과 에너지가 살아있는 음악이잖아요.”
그는 “요 근래 사실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며 “멜로디를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좀 비운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곡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힌 작곡가들도 많았다. 국내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이 모두 몇몇 한정된 작곡가들의 머리와 손에서 나오고 있는데, 저는 제 느낌에 충실하게 직접 곡을 써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가요계엔 그의 지도를 받았던 가수들이 수두룩하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만 100여명. 최근에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보아가 잠깐 ‘특강’을 받았고, 개그우먼에서 가수로 변신을 시도한 김미려도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다.
박선주는 갑자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보아의 중저음은 정말 세계 최고”라고 했다. “저도 이번에 함께 노래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여름에 두 번 정도 레슨을 했는데, 한국에서 듣기 힘든 대단한 음색을 지니고 있더군요. 그 중저음의 파괴력은 놀라웠어요. 장담하건대, 그 목소리를 잘 살려서 한국적 발라드를 부른다면 엄청난 히트곡이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고음은 누가 최고냐?”고 묻자, 지금 군 복무 중인 김범수를 꼽았다. 지난해 박선주는 god 해체 이후, 홀로서기에 성공한 손호영의 데뷔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손호영이 일부의 우려를 깨고 애절한 발라드 ‘운다’를 통해 솔로 가수로 화려한 첫발을 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 호영이를 보고 ‘이제 그만 웃었으면 좋겠다. 지겹잖아’라고 했어요. god에서 호영이의 주요 임무는 랩이었죠. 노래도 했지만, 아무래도 김태우의 역할이 컸으니까요. 하지만 솔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호영이는 노래를 제대로 불러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했어요. 가장 확실한 길은 정통 발라드로 승부를 거는 것이었죠.”
그는 “호영이는 3개월 동안 그야말로 미친 듯이 노래 연습을 했다”며 “제가 가르쳤던 수많은 가수 중에서 성실성으로는 단연 최고였다”고 했다.
“생각해보세요. 3개월 동안 주말 빼고는 매일 하루 7~8시간 동안 노래 연습을 했어요. ‘토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죠. ‘운다’는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노래입니다.”
노래 잘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박선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김범수씨도 사실 ‘음치’, ‘박치’였다는 것 아세요? 제가 몇 차례 가르쳤던 박신양씨도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는데, 요즘 무대에서 가끔 노래하는 것 보면 웬만한 가수 뺨칠 정도로 잘해요.”
그는 “가수로 성공하려면 타고난 음색이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모래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보컬 트레이닝 전문 학원을 설립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수강생 수는 15명. 2개월에 한 번씩 테스트를 하는데, 실력 향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학원을 떠나야 한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돼서 너무 감사해요. 놀랍기도 하구요. 저는 노래에 인생을 걸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능력을 자꾸 불려서 크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펀드 매니저가 돈을 불려나가듯이 말이에요. ‘보컬 펀드 매니저’라고나 할까요?”
그는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남들을 가르치는 것도 보람이 엄청나다”고 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이라고 묻자, 한참을 침묵한다. “모르겠어요.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가 생각하는 노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의외로 그는 ‘자신감’을 꼽았다. “가수든 일반인이든 제가 교습을 시작하면, 이것저것 다양한 가르침을 주게 되지만 사실 핵심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에요. 특히 가수들에게 자신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래에 대한 마음속 열정을 믿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