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다모 코소보(코소보를 내줄 수 없다)!’ vs ‘벳벤토시예(독립은 우리 손으로)!’

옛 유고 연방 적통자(嫡統子) 세르비아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좌우할 마지막 협상 시한이 10일로 다가왔다. 세르비아는 알바니아계가 주민의 90%인 코소보에 ‘자치권 부여는 가능하지만 독립은 안 된다’는 입장이고, 코소보는 ‘세르비아와의 독립협상이 실패하면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말해 왔다. 이같은 양측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타협의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11월 17일 치러진 코소보 총선에서 하심 타치(Hashim Thaci·39)의 코소보민주당(PDK)이 승리, 극단적인 경우 세르비아·코소보간 내전으로 비화할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타치 당수가 ‘12월 10일 이후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 선언’을 공약으로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타치가 코소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취재차 세르비아·코소보를 방문했을 때의 일. 세르비아나 코소보 사람들 공히 타치 당수를 ‘자르표리(알바니아어로 뱀·snake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1997년 세르비아·코소보 내전(內戰) 때 코소보해방군(KLA)을 이끌며 게릴라 훈련을 담당하고 실제 전투에서 기습작전으로 세르비아 경찰과 정규군에 커다란 피해를 줬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코소보 최종 지위 협상을 위해 오스트리아 바덴을 찾은 코소보민주당 하심 타치 당수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런 그의 모습은 ‘거칠었던’ 청년기와 무관하지 않다. 코소보 의회에 있는 의원 기록에는 그가 코소보의 프리슈티나대학에서 역사·철학을 공부했고, 스위스 취리히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한 것으로 나와있다. 분명 맞는 이력이다. 하지만 대학 시절의 타치를 기억하는 상당수의 세르비아인들은 그를 ‘학구파라기보다는 아웃사이더(outsider)였다’고 회고한다.

타치는 코소보 제2의 도시 미트로비차의 시장상인들이 파는 물건을 돈도 내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 바람에 상인들과 다투기 일쑤였다. 미트로비차의 술집에서 세르비아계 손님들과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이 ‘반항’으로 점철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학을 졸업한 1993년, 이번에는 마피아와도 관련을 맺는다. 드레니차가 고향인 그는 ‘드레니차그룹’이라는 지하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 영역은 무기 밀수, 매춘, 차량 강탈 등. 그러면서 코소보 인근 알바니아·체코·마케도니아의 마피아들과 긴밀한 연대를 맺으면서 범죄 행위로 벌어들인 돈으로 무기를 샀다. 타치의 여동생이 알바니아 마피아의 핵심조직원과 결혼한 것도 이때다.

그러고는 1993년 5월 세르비아 경찰 4명을 사살하는 첫 게릴라 행위를 시작했다. 이후 1996년까지는 미트로비차와 페치 사이의 국도를 달리던 세르비아 경찰차량에 기습 난사를 하는가 하면, 야간 세르비아군 기지에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테러 쪽에 무게를 두고 저항운동을 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내전이 종착역을 달리던 1998년쯤 타치는 변신을 시도한다. 코소보 반군(反軍) 지도자 자격으로 세르비아와의 정전 협상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코소보의 즉각적인 독립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게릴라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그는 회담을 중단하고 옛 동료들을 설득시킨 뒤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협상을 타결지었다.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

내전이 끝난 뒤 그는 코소보를 관할하는 미국 등 국제기구 관리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을 받아,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시킬 정치 지도자로 변신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코소보해방군을 해산하고 PDK 당수가 된 뒤 옛 동료 게릴라들을 규합, 정계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대 난제는 마피아 등 불미스러운 요소와의 연계를 끊는 것이다. 알바니아계가 전체인구의 90%를 넘고, 이들 대부분이 독립을 원하는 코소보에서 PDK의 지지율이 35%를 밑도는 것은 바로 깨끗하지 못한 타치 당수의 과거 때문이다. 세르비아 측 주장이긴 하지만, 심지어 타치가 국제테러집단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과 1995년 만난 뒤 지금도 연계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계속 나온다.

타치 당수가 코소보의 차기 총리가 되고, 코소보의 독립을 계속 추진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총선 승리 후 “코소보 독립의 새로운 세기가 시작됐다”는 그의 일성(一聲)을 코소보 주민들은 믿으면서도, 어딘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