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른다. 흰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이 흰옷과 함께 하면서, 고유하고 독특한 민족정서를 형성해왔다. ‘삼국지위지’에 ‘부여 사람들이 흰색을 숭상하여, 큰 소매 달린 흰색 도포와 바지를 입었다’고 하고, 당나라 역사책 ‘북사’에도 삼국시대 사람들이 흰옷을 숭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법도에 죽고 사는 사대부들은 흰옷을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종은 즉위 이듬해 백의금지령을 내렸고, 숙종 때도 영의정 허적과 참찬 민창도 등도 흰옷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헌종이나 영조 때도 국가는 백의금지령을 내렸다. 나라가 줄곧 흰옷에 딴죽을 건 것은 ‘오행설’ 때문이었다. 동쪽나라 조선은 오행 중에 ‘목(木)’이므로, 이를 상징하는 청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유교를 숭상하던 사대부들의 믿음이었다. 게다가 흰옷은 곧 상복(喪服)이므로, 이를 금기시하였던 것이다.
흰옷에 대한 ‘탄압’은 조선 말기에도 이어졌다. 1894년 갑오개혁 무렵에 개화파들은 색깔 있는 옷을 장려하였다. 한스러운 상복을 벗어 던지고 새롭게 ‘글로벌 시대’를 열어가자는 뜻이었을까. 그러던 1906년에는 아예 흰옷을 못 입게 하는 법령이 공포됐다. 하지만 통치자들의 의도는 관철되지 않았다. 백성들은 흰옷을 벗고 싶어도 마땅히 갈아입을 색깔 옷이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번번이 백의금지령에 콧방귀를 뀌어버렸다. 더불어 일제강점기에는 흰옷이 항일정신의 상징처럼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흰옷은 8·15광복 이전까지도 고수됐다.
그러면, 한민족은 왜 흰옷을 입게 됐을까? 그리고 왜 수천 년간 흰옷을 지켜온 것일까? 세간의 농담처럼, 염료와 염색기술이 부족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뒤떨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또 민족성이 순수해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 기준으로 보면 ‘누드’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투명할 터다.
근대 일본의 동양사학자인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는, 몽골 침략으로 나라가 망한 고려인들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흰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삼국지위지’ 등의 역사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에게 깜빡 속을 뻔했다. 또 다른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주변국의 오랜 침략으로 한이 맺힌 조선인이 상복을 일상복으로 입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추측일 뿐이다.
한편, 민속학자 최남선은, 태양을 상징하는 흰빛을 신성하게 여겨 한민족이 흰옷을 자랑삼아 입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해를 숭배하는 원시적 신앙이 흰 빛을 좋아하게 했다는 설이다. 그런데 흰색 신앙은 북방아시아계 민족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한다. 북방민족의 원류인 몽골이야말로 ‘흰색에서 시작하여 흰색으로 끝나는’ 나라다. 그들이야말로 원조 ‘백의민족’인 셈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소의 머리를 하고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농사의 신’이 나오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흰색에 대한 신앙과 관념은 흰옷의 기원이 될지언정, 수천 년간 흰옷을 지켜온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거기에는 뭔가 현실적인 이유가 있음직하다. 최근에 한 문화사학자는 그 이유를 ‘잿물’에서 찾는다. ‘잿물’은 볏짚이나 콩깍지 등을 태운 재를 물에 담가 그 웃물을 뜬 것으로, 천연 알칼리성 용액이다. 일찍이 한민족은 이 잿물에 빨래를 삶아 살균과 표백을 하는 세탁방법을 널리 이용함으로써 흰옷을 늘 하얗게 유지·관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잿물은 뻣뻣한 무명옷을 하얗고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논밭에서 일하는 동안 흙물에 범벅이 된 옷도 잿물에 한번 삶아내기만 하면 눈부시게 하얀 진솔옷으로 거듭난다. 잿물이 있는 한 백의민족의 입성은 늘 하얗게 빛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백의민족인 이유를 한 가지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유가 한(恨) 때문은 아니다. 흰색에 대한 신앙 때문만도 아니다. 통상의 관념과는 달리, 한민족에게 흰옷은 오히려 손질하기 쉽고 위생적인 옷이었다. 그런 현실의 편리함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굳이 ‘색깔 있는’ 민족이 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