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테 안경 너머로 사람 좋게 보이는 미소를 품은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런던 시내 해머스미스 주택가. 19세기 빅토리아 풍의 닮은 꼴 집들이 늘어선 이 동네에 작가 알랭 드 보통(38)이 산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시대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20만부 넘게 팔린 데뷔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를 비롯,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은행나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이상 생각의 나무)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불안’ ‘동물원에 가기’ (이상 이레)등 대부분 작품이 번역돼 있다. 장르와 주제 또한 소설과 다큐멘터리, 르포를 넘나든다.
그의 저작은 철학, 미술, 음악, 건축, 문학이 서로 섞이는 ‘인문학의 뷔페’다. 청춘 남녀의 연애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원제 Essay in Love)엔 플라톤과 파스칼, 니체, 존 스튜어트 밀에서 마르크스까지 숱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당사자들조차 헷갈려 하는, 모호한 연애의 감정들을 사상가들의 입을 빌려 뚜렷하고 명확하게 해부한다. 연애소설이라지만 조금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맛깔 나게 버무려낸 인문학적 사유에 푹 빠져든다. 건축이나 여행, 철학을 다룬 책들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이달 중순, 그를 만났다. 데뷔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리 발 런던 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여성 클로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꼼꼼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철학 박사 과정을 갓 마친 스물 넷에 연애 소설을 썼다.
“처음엔 개인적인 문제를 풀어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연애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를 들어보고…. 소설이 내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경험이 바닥에 깔려있지만, 다른 이야기를 섞었다.”
―연애의 순간에 감정을 분석하고 있다니 특이하다.
“사랑에 빠질 때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고들 말한다. 생각은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내게 생각은 늘 중요했다. 아름다움을 더 오래 느낄 수 있었고,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명확하게 해줬다. 글쓰기는 나에겐 삶을 잠깐 멈추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소설 여주인공 클로이와의 첫 데이트가 런던 시내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에서였다. 이 미술관이 런던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런던 젊은이들은 데이트할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자주 간다. 일종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과 사랑은 잘 어울리는 한 쌍 아닌가. 좀 웃긴 점도 있다. 데이트 할 때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 하려는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도 주말엔 하이드 파크 근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 자주 간다.”
보통은 프랑스 혁명이나 공산주의의 실험이 남녀간의 사랑과 비슷하다고 했다. 통일에 대한 강조, 연인/국가의 전능에 대한 믿음, 이전의 이기주의를 포기하고 자아의 경계선을 없애라는 촉구, 더 이상 비밀이 없기를 바라는 욕망(비밀에 대한 공포는 연인의 편집증 또는 국가의 비밀경찰조직을 탄생시킨다)이 그렇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과 소비에트 실험을 연애에 견주는 상상력이 발칙하다. 이렇게 얽힌 남녀관계의 해결사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내세운다. 밀은 국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국민에게 다른 구두를 신으라거나, 어떤 책을 읽으라거나, 이를 치실로 닦으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가 ‘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를 알 만하다.
―당신은 일상 생활을 철학과 예술, 시, 심리학과 연관 지어 쉽게 설명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문학은 일상과 유리돼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전통적인 인문학 커리큘럼은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영국 대학들은 자꾸 담을 쌓아 올리려고 한다. 대중들은 TV나 타블로이드 신문 같은 형편없는 대중문화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진리와 일상 생활을 연결하는 작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명료하게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작가들에겐 커다란 도전이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독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잘못이다.”
―역사학자인 조너선 스펜스 예일대 교수는 영국의 19세기 작가들이 교양 대중을 위한 글쓰기의 전통을 쌓아 올렸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18세기 프랑스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볼테르, 파스칼, 몽테뉴…. 그들은 명확하고,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게 썼다. 복잡하게 쓰지 않았다. 이들은 문화가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날 프랑스와 영국엔 이런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신이 복잡하고, 세련된 지식인인데, 아무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당신이 정말 어떤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철학 공부를 그만 둔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모든 사람을 위해 쓸 것인가, 아니면 다섯 명을 위해 쓸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였다.”
보통은 아내와 세 살바기 새뮤얼, 갓 돌 지난 사울과 함께 산다. 집필실 책상은 기저귀 가는 곳으로 바뀌었고, 카펫은 아이들이 흘린 음식물 때문에 더럽혀졌다. 지난 여름 일간지 가디언에 쓴 칼럼에 “서재는 아이들의 침실이 됐고, 평화로웠던 집은 대낮의 아마존처럼 시끄럽다”고 썼다. 지금은 길 건너 집 3층을 빌려 집필실로 쓰고 있다. 오크 나무로 만든 책상도, 그럴 듯한 전망도 없는 곳이다. 이 초라한 곳에서 ‘행복의 건축’을 썼다. 그는 “벽돌과 PVC 창문으로 둘러싸인 이 삭막한 곳이 도리어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떤다.
“한국 독자들이 제 책을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문화권의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작가들의 꿈이거든요. 한국 독자들은 매우 개방적이에요. 제 홈페이지(www.alaindebotton.com)에도 일주일에 몇 통씩 한국에서 메일이 날아옵니다. 제 캐릭터가 한국 독자들과 잘 어울리는 건지…. 일본은 그렇지 않거든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그는 “초대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배웠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3년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건축, 여행,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인문학적 재치가 번득이는 글로 요리했다.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았다. ‘삶의 철학산책’은 TV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됐다. 지금은 ‘일’(Work)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