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집권기(2001~2006년)는 일본의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되고 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의 관료 주도 발전 시스템이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관(官)에서 민(民)으로’라는 고이즈미 정부의 간명한 구호는 관료 주도 시스템을 민간 주도로 변화시킨 개혁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다. ‘큰 정부’ 유산을 물려받은 이명박 정부 역시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개혁은 의지와 지혜의 합작품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의지력으로 개혁을 밀고 나갔다면, 야전 사령관으로 개혁을 집대성한 것은 민간 학자 출신이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사진) 현 게이오(慶應)대 교수였다. 그는 고이즈미 집권 시기 내내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권력이 집중된 경제재정자문회의를 통해 개혁 정책을 쏟아내고 실천했다. 우정공사와 정책금융 민영화, 수도권·노동 규제 완화, 특구(特區) 설치, 감세(減稅), 공공사업 반감(半減)을 비롯한 재정 개혁 등 21세기 들어 일본을 변화시킨 대부분의 개혁 정책이 그를 통해 이루어 졌다. 도쿄에서 다케나카 교수를 만났다.
―왜 민간 주도가 필요합니까?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의 발전 단계가 낮을 때엔 ‘나라가 무엇을 실현해야 하는가’ 하는 목표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합니다. ‘개발 독재’란 말도 있습니다만 그 때는 자원을 집중 투하해서 관(官) 주도로 경제 성장을 이끌어가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요. 하지만 경제가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노하우를 포개고 포개서 진보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민(民) 주도는 필연적인 숙명이지요.”
―일본은 근대화 이후 관료 주도로 선진국이 됐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공산주의’란 말도 듣는데.
“일본에선 2000년대 들어 확연하게 눈에 보인 미래상이 있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것이었지요. 출산율이 낮으니까. 인구가 줄어드는데 정부는 큰 상태로 남아 있으면 다음 세대의 세금 부담이 점점 더 커집니다. 게다가 고령화까지 진행되면서 세금 부담은 젊은 세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요. 모두 다 뻔히 알고 있는 미래였습니다.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국도 같은 사정입니다만, ‘작은 정부’란 무엇입니까?
“고이즈미 정부는 성청(省廳·부처)을 대폭 줄인 하시모토 행정개혁의 기반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조직만 줄인다고 작은 정부가 실현된 것은 아니지요. 작은 정부란 한마디로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 넘기는 작업’을 뜻합니다. 관료의 힘이 아니라, 민간의 활력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작은 정부이지요.”
―북유럽은 큰 정부로 성공했습니다. 한국 노무현(盧武鉉) 정부도 북유럽을 발전 모델로 삼았었지요.
“북유럽 국민들의 부담률은 70%에 달하지요. 그래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멋진 나라가 됐습니다. 사이즈가 작기 때문이지요. 인구 700만명, 800만명 정도의 작은 나라는 큰 정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가 적으면 정부의 비효율을 국민들이 체크해 바로 잡아나갈 수 있습니다. 일본은 1억2000만명입니다. 인구가 아무리 줄어도 큰 정부가 필요한 수준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정부를 하나하나 체크할 수 없습니다. 큰 정부는 비효율에 빠질 수밖에 없지요.”
―한국은 5000만명 정도입니다.
"역시 많지요. 5000만, 6000만명 수준인 영국도 '대처 혁명'으로 작은 정부를 실현한 뒤 경제성장률이 올라갔지요."
―고이즈미 개혁엔 '경제재정자문회의'란 조직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독특한 조직이었지요. 집중된 권력만큼 많은 개혁을 이뤄냈습니다.(총리를 보좌하는 내각부에 소속된 이 조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경제 정책, 예산 편성, 세제 개편 등 옛 대장성과 경제기획청의 강력한 권력을 법률로 장악하고 있다. 고이즈미 시대에 이 조직의 운영 책임을 맡았던 것이 다케나카 장관이었다.)
"경제재정자문회의는 관료가 아니라 정치가가 나라 정책을 주도하고 결정한다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여기서 정치가란 총리를 뜻하지요. 경제재정자문회의를 만든 것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였습니다. 하시모토 행정개혁의 본질은 부처 수를 줄인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내각부에 집중시킴으로써) 총리의 톱다운(top-down·하향식)에 의한 정책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작은 정부'가 필요한 시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관료는 자신의 조직이 작아지는 것이 싫으니까 당연히 작은 정부를 만드는 개혁에 반대합니다. 이럴 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개혁을 할 수 있는 것은 정치뿐입니다. 하시모토씨가 만든 제도를 고이즈미씨가 잘 사용했다고 할 수 있지요."(2006년 7월 숨진 하시모토는 고이즈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한국도 정부 개편을 통해 청와대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톱다운 방식'은 작은 정부, 민(民) 주도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요?
"경제재정자문회의에는 두가지 아주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장관 이외에 민간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장관은 부처, 관료에 아주 밀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관료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지요. 부처를 대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민간은 (부처의 영향력을 안 받기 때문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론'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기득권에 사로잡히지 않고 원래 있어야할 정책, 즉 국민 여론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둘째 자문회의에서 논의한 의사록이 3일 후에 국민들에게 공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이상한 논의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록 공표는 법률적인 의무입니까?
"운영상의 문제입니다."
―고이즈미 시대가 끝나자 자문회의의 역량이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의지의 문제이지요. 고이즈미 시대에는 총리의 아주 강력한 의지로 개혁을 이끌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혁을 계속하자는 기세와 모멘텀이 사라졌지요. 같은 제도라도 사람이 달라지면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중요합니다."
―정책통(通)과 정책 전문가를 구분하면서 정책 전문가 등용을 주장했는데.
"관료가 결정한 정책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정책통'이라고 부릅니다. 관료가 그런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말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정책통이 아니라 정책 전문가입니다. 관료가 가르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책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관청에도 민간에도 많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정부에서 일을 해보고 다시 학계로 들어가 학문을 하는 방식으로 민관(民官)이 개방되면 정책 전문가를 많이 키워낼 수 있겠지요."
―한국은 나뉘어 있던 경제정책과 예산편성 권한을 동일 부처로 합쳤습니다. "개혁의 역행"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일체(一體)'가 아니면 안됩니다. 기업으로 말하면 영업부장과 경리부장이 따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따로 움직이면 경영이 안되지요. 나라를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재정과 매크로(macro·거시) 경제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문제는 그런 권한을 관료가 독점한다는 것입니다.
"관료는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책은 국민의 경제적 후생,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 존재하지요. 하지만 정책에 의해 (관료들에게) 이해(利害)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국민 행복이 아니라) 관료의 영향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위해 정책을 만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정공사 민영화 때 재무성(대장성 후신) 관료들은 열심히 저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특별회계를 개혁할 때엔 저항했습니다. 우정 민영화는 조직의 이권과 상관없고 특별회계 개혁은 이권에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관료의 '숙명'입니다. 이것을 컨트롤하기 위해 정치가 필요한 것이지요."
―정치 역시 기득권 '트라이앵글(정·관·재)'의 정점에 있습니다. 정치야말로 고이즈미 개혁의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 아니었습니까?
"족의원(族議員·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문제이지요. 족의원과, 족의원을 뒷바침하는 경제계, 이들을 중계하는 관료, 이익을 방어하는 삼위일체의 공동체입니다. 어느 쪽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표면적으로 대립한 것은 국회를 무대로 강력히 (개혁을) 비판한 정치가들이었지요. 관료는 장관의 밑에 있으니까 제어가 가능했습니다."
―족의원들의 공격을 방어해준 정치가는?
"고이즈미 총리가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습니다. 간사장(고이즈미 총리에 이어 자민당 서열 2위)이던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도 아군이었지요."
―역시 권력 중추부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공공 부문 민영화 문제로 정권을 걸고 선거(2005년)까지 치렀습니다만.
"개혁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리엑티브(reactive), 즉 과거의 적폐(積弊)를 바로 잡기 위한 피동적인 개혁. 또 하나는 프로엑티브(proactive), 즉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공격적인 개혁. 둘 다 필요합니다. 고이즈미 시대의 대표적인 리엑티브 개혁은 불량채권 처리였습니다. 프로엑티브 개혁의 상징이 우정공사 민영화였지요. 작은 정부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큰 정부 조직을 민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우정공사였지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이것을 양보할 순 없었습니다."
―고이즈미 정부는 수도권, 노동 규제 등 많은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했습니다. 규제 개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고이즈미 총리가 수용해 실현된 '특구(特區·일정 지역에서 규제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규제 완화를 얘기하면 규제 완화의 폐해가 클 것을 모두 염려하지요. 특구는 규제를 완화해도 폐해가 없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사례를 보여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규제 완화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장벽을 특구가 낮춰준 것입니다."
―총무장관으로서 NHK 개혁도 주도했습니다. 왜 공영방송 개혁이 필요한 것인가요?
"일본에는 NHK와 민영방송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NHK 프로그램의 퀄리티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민방 프로그램의 퀄리티는 낮다고 생각하지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함께 경쟁하는 체제가 좋습니다. 하지만 NHK는 거버넌스(governance·지배구조)에 아주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불상사가 자꾸 일어나고, 불상사를 은폐하고. 프로그램은 좋은데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거버넌스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인가. NHK에는 경영위원회(KBS의 이사회에 해당)가 있습니다. 큰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원 비(非)상근이었지요. 이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진이 전원 비상근인 회사는 정상이 아니지요. 상근을 둘 수 있는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거버넌스를 확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다케나카 당시 총무장관은 '경영 자원을 NHK의 공공성에 집중해 조직을 슬림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개혁에 착수, 채널 삭감과 자회사·관련단체 통폐합 방침을 세웠다. 시청료 20% 인하 방침을 세운 것은 후임 스가 요시히데 장관 때였다.)
―고이즈미 시대 이후에도 정부의 NHK 개혁 의지는 여전합니까.
"제 생각을 다음 스가 장관이 이어 받았고, 스가 장관 생각을 마스다 (현)장관이 물려받았습니다. 2년 전에 제기한 문제들이 계승되고 있지요."
―교수님은 신문 칼럼에서 '일본이 개혁하려면 앞으로도 10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발전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프로엑티브' 개혁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시행해서 성공했는데도 일본이 안 하는 개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 인하, 그리고 요즘 제가 주장하는 것이 '도쿄대 민영화'입니다. 도쿄대는 일본에서 국민 세금을 가장 많이 쓰는 대학입니다. 그런데도 세계 랭킹 17위. 도쿄대를 세계 상위 5위권 내에 진입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도쿄대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습니다. 국가 보호에 위해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경쟁을 통한 체질 강화가 필요하지요.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위해 민영화가 필요합니다."
―역시 교육개혁이군요. 다른 과제는?
"다음주 한국에 갑니다. KIC(한국투자공사·정부가 보유한 외환, 공공기금등 자산을 운용해 이익을 내는 공사)를 연구하기 위한 출장이지요. 일본에도 이런 조직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하늘을 개방하는 '오픈 스카이(open sky)' 정책이 필요합니다. 공항의 자유화입니다. 지금 하네다(羽田)공항은 일부만 국제선 운항을 합니다. 하네다를 개방해 국제화하면 도쿄와 홍콩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이 갈 길은 한국인이 생각할 문제입니다만. 역시 '경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역시 상당한 규모를 가진 일부의 경제계, 즉 재벌이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작은 기업들이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재벌이 과점(寡占)을 이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이즈미 개혁으로 빈부격차가 커졌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확실히 일본에선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지요. 한국도, 일본도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의 프론티어 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프론티어의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격차가 커지게 돼 있습니다. 개혁을 하기 때문에 격차가 커진 것이 아니라, 개혁을 하든, 안 하든 격차가 커지는 시대이지요. 격차는 없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개혁을 해서 격차가 커졌다'고 말하면서 개혁을 안 하면, 일본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어 버립니다. '격차'란 것은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변명, 정치적 캠페인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