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과 한총련이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 2008년 1월 심상정, 노회찬을 필두로 한 민노당 평등파는 민노당 주류의 종북주의(從北主義)를 비판하면서 탈당했다. 곧이어 그들은 북한 인권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하는 진보 신당을 창당했다. 민노당이 반분된 것이다.
또 사실상 민노당의 학생 조직이라 할 수 있는 한총련은 출범 16년 만에 '의장 선출'에 실패했다. 자신의 대표조차도 뽑지 못하는 역량의 허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한때 200개가 넘던 한총련 소속 대학은 올해 30여개로 줄었다.
종북주의적 좌파. 이는 세계 좌파의 역사를 살펴 보면 비단 한국적 현상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좌파들 중에도 친소련 세력들이 다수 있었다. 이는 냉전시대 사회주의-자본주의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서 일정 정도 자연스러운 면도 있었다.
2차 대전 직후까지 사민주의자를 포함한 유럽의 좌파는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소련, 동구 국가들을 이념적 동반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 좌파의 소비에트 진영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탈린 치하의 극악한 인권 유린과 독재의 실상이 외부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좌파 내부에서도 소련, 동구 정권의 반민주성, 인권 침해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좌파 내부에서 새로운 노선 투쟁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좌파의 분화를 가져 온다.
대표적으로 1951년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발표된 프랑크푸르트 선언(또는 민주사회주의 선언)이 있다. 이 선언은 자유세계 30여개국 사회주의 정당에 의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결성되면서 발표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파시즘에는 자본주의 파시즘도 있지만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파시즘도 존재하며, 민주사회주의자는 두 가지 파시즘 모두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자를 독재를 옹호하는 친독재 사회주의자들과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사회주의자들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독재 좌파와 민주적 좌파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프랑스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레지스탕스 운동의 선두에 섰고 이 때문에 해방 직후 프랑스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한때는 거의 집권 세력이 될 뻔도 했다. 그런데 프랑스 공산당은 '민주사회주의 선언' 이후 점차 몰락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소련 독재를 명확히 비판하지 않은 것이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다.
이에 반해 소련 파시즘을 비판하며 민주적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 1969년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은 갈수록 세력이 확장됐다. 1981년에는 당수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집권까지 하게 됐다.
사실 민노당과 한총련 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종북주의자 또는 주사파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명시한 좌파 파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북한은 당시 소련, 동구보다도 훨씬 전근대적이고 개인 숭배가 심한 봉건 절대 왕정과 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주사파를 좌파라고 불러주는 것도 부적절할지 모른다.
이에 반해 북한 인권 개선을 들고 나온 진보 신당은 민주적 좌파이다. 시기가 좀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물론 진보 신당이 프랑스 사회당처럼 성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국 유권자들의 눈높이가 1970~80년대 프랑스 유권자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이왕에 좌파에 표를 찍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노당이 아니라 진보 신당에 한 표를 주라고 권하고 싶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난다면 민노당은 병든 날개이고 진보 신당은 그나마 건강한 날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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