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캠퍼스를 오른쪽에 끼고 남산 도로를 따라 올라가 국립극장을 지나면 왼편 산마루턱에 우뚝 솟은 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이들이 결혼하고 여름철 수영을 즐겼으며, 국민들을 웃기고 울렸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안식처였던 곳. 중구 장충동 타워호텔이 문을 닫았다. 회색 건물에는 'TOWER HOTEL'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지만, 서울시민과 함께 했던 남산의 추억을 뒤로 하고 지난해 2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산 최고 조망으로 인기
7일 리모델링 준비가 한창인 타워호텔 자리. 17층 본관 옆 커피숍과 결혼식장이 있던 신관 자리는 어수선했다. 호텔 안은 뿌연 먼지로 뒤덮여있지만 천정 샹들리에가 아직도 달려있고, 'Coffee Shop' 간판도 빛 바랬지만 그대로다.
타워호텔은 유엔참전국 기념관 건물을 인수해 지난 1969년에 문을 열었다. 도심에 변변한 숙박시설이 없던 시절, 전망 좋은 남산에 자리한 특급호텔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80년대 들어 세계적 호텔체인들이 들어선 뒤에는 서민적 색채를 띄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타워호텔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그 유명한 결혼식장.
주말이 되면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태극당 과자점 앞은 타워호텔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려는 하객들로 혼잡을 이뤘다. 1년에 400쌍 넘는 커플을 탄생시켰던 결혼식장은 워낙 사람들이 몰려 호텔은 2006년 12월 영업을 중단한 뒤에도 결혼식장은 예약 고객들 때문에 2007년 2월까지 운영했을 정도다.
예식장 옆 커피숍도 빼어난 전망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남산자락 아래로 펼쳐진 국립극장, 자유센터 웨딩홀, 신라호텔, 도심이 시원스레 들어온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찾은 정객들, 국립극장에 둥지 튼 예술인들, 남산타워 데이트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려는 맞선 커플들이 주된 손님들이었다.
물미끄럼틀을 갖춘 '타워수영장'은 여름철 시민들 피서지로 사랑받았고, 70년대까지 운영했다는 나이트클럽도 '물 좋기로' 유명했다. 한 전직 임원은 "군사 독재 시절 고위층 아들들이 나이트클럽에 놀러가 사고를 치면 근처 남산 안기부에서 바로 출동해 수습했다는 선배들의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왔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타워호텔이라는 이름을 익숙하게 했던 것은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때문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의 '주거래 호텔'로 선수들이 여장을 풀었기 때문에 월드컵 등 빅 이벤트를 앞두고 선수단과 취재진들이 몰려들었고, 더불어 호텔도 짭짤한 광고효과를 올렸다. 지금도 커피숍 자리에는 월드컵 4강 신화 직후 송종국·이영표·이운재 등 선수들의 사인이 들어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회원제 호텔로 리모델링
타워호텔 자리는 2009년 6월부터 싱가포르의 리조트 체인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들어서 20년 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주요 건물들은 헐리지 않고 리모델링돼 뼈대는 그런대로 남겠지만, 회원제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긴 어려울 것 같다.
호텔 본관은 그대로 객실로 쓰이고, 결혼식장과 커피숍 자리에는 스파와 헬스클럽, 실내 수영장이 들어서게 된다. 업체 측은 "한국인의 휴양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 10여 년 전부터 한국 진출을 모색해왔다"고 밝혔다.
업체측은 타워호텔의 문화적 가치 때문에 리모델링 작업에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17층 높이의 본관 건물은 한국 건축계 거장인 김수근의 작품이고, 호텔 터도 남산 서울성곽 자리와 일부 겹치기 때문이다. 일단 본관 건물에 대해서는 유리로 시원하게 두른 디자인 초안을 마련했다.
리모델링을 총괄하고 있는 어반 오아시스사의 설경모 건설본부장(부사장)은 "남산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벌여 남산의 색다른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