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하천(강)을 건너면 이롭다'는 뜻의 '이섭대천'(利涉大川). '주역'을 읽을 때마다 여러 군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이다. 여기서 '큰 강'(大川)은 인생의 '곤경' 내지는 '위험'을 상징한다. 옛날 사람들은 강 건너는 것을 어려운 일로 생각하였다.
배도 흔치 않고, 다리도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여행을 하다가 큰 강을 만나면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강을 건너지 않고 돌아 갈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강은 건너야만 하는데, 어떻게 큰 강물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단 말인가! 주역에는 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도강(渡江)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배어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수십 개의 강을 만나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일야구도하기'(日夜九渡河記)는 하룻밤에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면서 두려움에 떨었던 내용이 나와 있다. 배가 없이 말을 몰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건널 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만약 강물이 늠실늠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어 현기증이 생기고 자칫하면 급류에 떠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밤에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급류소리가 귀신 우는 소리 같고, 벼락소리 같고, 천둥소리 같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도강하기 어려운 장소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이다. 여의도는 비범한 곳이다. 여기로 가려면 대천(大川)을 반드시 건너야 한다. 보통 사람이야 자동차 타고 다리를 건너면 되지만, 국회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오로지 수영을 해서 건너가야 한다. 옷도 벗고, 신발도 벗고, 자기 팬티의 색깔까지도 만인에게 공개하면서 헤엄을 쳐야 한다. 잘 건너면 '이섭대천'이다.
그런데 한 정치인은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휩쓸렸다. 다른 사람은 한강 하나만 건너가면 되었지만, 그는 거기에다가 운하(運河)를 추가로 또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강(江)과 하(河)를 건넌다는 것은 매우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선거가 끝나고 주역의 '이섭대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입력 2008.04.14. 22:20업데이트 2008.04.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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