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부산 중구 광복로. 봄날에 가족 혹은 친구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거리 환경 개선 사업이 최근 마무리된 덕에 새롭게 단장된 인도(人道)와 차도, 간판들이 깔끔하면서도 단정했다. 종려나무, 홍단풍 등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나무 50여그루도 군데군데 자리 잡았다. 아직 작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분수대도 곳곳에 만들어졌다.
시민 김희영(여·32·부산시 반여동)씨는 "아기자기한 간판이며, 예쁜 길 모양 하며, 이렇게 달라졌는지 몰랐다"며 "오랜만에 왔는데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고 말했다.
광복로에는 시민들뿐 아니라 타 지역 공무원들도 자주 찾아온다. 지난 11일에는 울산 남구청장을 비롯한 울산 남구 관계자 30여명이 방문했다. 이달 초에만 전북 전주시, 강원도 춘천시, 충남도 등에서 공무원들이 다녀갔다. 부산 중구 시범가로추진단 이천호 계장은 "광복로의 달라진 모습에 부산 시민들도 놀라고, 개선 전후의 모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제로 살펴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직후 부산 최고의 번화가로 명성을 누리던 부산 광복로가 거리 환경 개선의 성공사례가 돼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광복로는 2005년 전국 첫 '정부 지정 도로환경정비구역'이 됐으며, 지난 2월 말 사업이 마무리됐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86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돼 중구 중앙동 옛 시청 건너편인 광복로 입구에서 창선상가까지 750여m, 부산국제영화제(PIFF)광장 240m 등 모두 1㎞에 가까운 거리의 가로 시설물과 간판 등이 정비됐다.
오가는 차량과 주차 차량들로 뒤엉켜 혼잡했던 2차로 차도를 S자형 1차로로 바꾸고 보도와 차도를 같은 높이로 만들어 사람들이 다니기 좋게 만들었다. 대신 밤에는 보도와 차도 사이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조명이 들어오도록 해 양쪽을 구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길의 전체적 색을 파스텔풍으로 꾸며 화사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간이 문화행사를 언제든 열 수 있는 쌈지 공연장도 거리 곳곳에 만들고, 지저분하게 난립했던 간판들을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통일해 과거 모습을 완전히 벗겼다.
거리가 변하자 떠났던 상가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해 지역 상권 부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10여곳의 매장이 새로 입점했고, 현재 개장을 준비 중인 곳도 여러 곳이다.
그러자 이 같은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에만 9곳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이다. 거리 공사가 시작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68개 지방자치단체와 15개 민간단체 등이 새로 태어난 광복로를 보고 배워 갔다. 국제건축문화제 디자인 워크숍이나 옥외광고협회 관계자들도 다녀갈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시 도시경관실 방문단이, 10월에는 일본 '중심 시가지 활성화연구회'가 견학 오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지금도 광복로 방문을 문의하는 전화가 전국 또는 해외에서 끊이지 않고 걸려오고 있다.
부산시도 광복로의 간판문화를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나섰다. 해운대구 센텀시티와 기장군 정관신도시, 강서구 명지주거단지 등 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에 시범구역을 정하고, 무질서한 간판 난립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오는 6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여기에 힘입어 중구와 지역 상인들은 광복로를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각종 전시회와 문화행사 등을 여는 계획을 세웠다. 오는 5월에는 광복로 준공 기념행사와 패션쇼가 열린다. 광복로 인근 이면도로 정비 연구용역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광복로의 새 모습을 인근으로 계속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광복로 맞은편에 들어설 120~130층 규모의 부산 롯데월드가 2013년 완공되면 광복로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