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는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溥儀)가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려 식물원의 정원사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세 살 때 황제가 된 푸이는 소년 시절 폐위되고 중년에는 일본의 허수아비로 만주국 황제가 된다. 이후 소련 전범 수용소에서 5년, 중국 전범 교도소에서 10년을 보낸 뒤, 말년에 이르러 베이징 식물원의 정원사로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실제 푸이는 어떤 인물인가? 푸이는 어린 시절 맛들인 부와 권력 중독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주변 인물과 민족을 팔아먹은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만주국 황제 시절에는 자신의 조국인 중국의 적 일본 천황을 어버이로 받들고 충성 서약을 하기도 했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심한 약물 중독과 낭비벽을 버리지 못했다. 또한 영화와는 달리 네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영화에서와 같은 자살 소동과 아들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빼고 긍정적인 부분을 첨가해 신화를 만들어냈다.
1908년, 3세의 어린 푸이(존 론 분)는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의 지명으로 죽은 광서제의 후계자가 돼 청나라 12대 황제로 등극한다. 그러나 1911년, 쑨원(孫文)이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일으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푸이는 궁내에서만 황제의 존호가 인정돼 자금성에 계속 머물면서 연금 상태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16세가 되던 해, 한 살 위의 원용(조안 첸 분)을 황후로 맞아들이고, 12세의 문수를 후궁으로 뒀다. 1924년, 펑위상(馮玉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푸이는 원용, 문수와 함께 자금성에서 쫓겨 나와 일본의 주선으로 톈진(天津)의 외국인 거주 지역의 별장으로 옮긴다.
1927년, 중국의 장개석 국민당 군대가 상해를 점령하자 푸이는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옮기고 군국주의 일본의 획책에 넘어간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동부를 점거하고, 이듬해 만주국을 세워 푸이를 허수아비 황제로 만든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괴뢰 정부인 만주국도 멸망했다. 푸이는 주둔 소련군에 의해 체포돼 소련의 전범 수용소에 갇혔다. 5년 후 중국으로 송치돼 중국 전범 교도소에서 10년 간 철저한 교화를 받는다. 1959년, 54세에 석방돼 베이징의 식물원 정원사로 일하다가 1967년 62세의 나이로 죽는다.
■논제: 역사의 사실과 해석의 관계
역사란 일반적으로 과거의 사실(事實)과 그에 대한 해석(解釋)의 뜻으로 사용된다. 즉, 역사란 용어는 객관적 사실과 이를 근거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해석의 두 부분을 의미한다. 15세기 조선의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한글이 민족 문화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는 해석이 바로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은 역사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사실과 사건이 없다면 역사는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사실과 사건은 한번 일어나면 그것으로 일단락이 되고 전혀 바꿀 수가 없다. 역사 속에서는 무한히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그 안에서 보다 중요한 사건을 선택해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역사의 '해석'이라고 한다.
역사의 해석은 역사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역사가 자신의 고유한 입장, 사실 선택의 기준, 해석 원리,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데 이것을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역사가의 해석, 사관이 때로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당시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제의 식민사관이다.
사실의 해석에 있어서는 편협한 정치적 의도를 벗어나 객관적인 태도와 역사적 사실의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상황이 아니라 예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기록자가 이를 기술해둔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 가능하다. 역사가는 이 사료를 정확히 인지해야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역사가는 사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료 자체가 이미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의 주관적 의사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당시의 시대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사료를 비교 분석하고 사료의 주관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더 생각해볼 거리
①역사란 과거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해석의 교환이라는 뜻으로 E. H. 카가 말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을 음미해 보자.
②예술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리얼리즘의 관점에 서 있다고 한다. 반면에 역사적 사실보다는 표현 기교나 방식에 중점을 두는 경우 모더니즘의 관점에 서 있다고 한다. 요즈음 TV 연속극을 통하여 붐을 이루고 있는 역사물들을 재구성할 때 허구가 개입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