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현실참여적인 시를 발표했던 김수영(1921~1968) 시인의 미발표 시 15편이 공개됐다. 계간 문예지 《창작과비평》은 9일 "김 시인의 미 발표작을 육필 원고 상태로 지니고 있던 부인 김현경씨가 시인의 40주기 추모행사 준비 과정에서 이들 작품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시들은 오는 17일 발간 예정인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다.

미발표 시 가운데 〈'金日成萬歲'〉(김일성만세), 〈연꽃〉, 〈결별〉 등 3편은 완성된 작품이지만 나머지 12편은 초고 형태다. 공개된 시들은 1954년부터 1961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번에 공개된 시들 가운데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1960년에 쓴 〈'金日成萬歲'〉다. 시는 남한 내 언론자유 신장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제목에 내포된 위험성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金日成萬歲'를 따옴표(' ')로 둘러싸 자신이 만세를 부르는 당사자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시 내용을 확인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이념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일종의 풍자시"라고 분석했다.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새 원고지에 옮겨 쓴 시 '金日成萬歲'. 시 제목을 검게 지웠다. 오른쪽은 김수영 시인.

' '金日成萬歲' /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詩人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시인의 시와 산문을 모아 1981년 펴낸 《김수영 전집》(민음사)에는 시인이 이 시의 제목을 〈잠꼬대〉로 바꿔 발표하려 했다가 무산된 내용을 담은 일기(1960년 10월18일자와 29일자)가 수록돼 있다. "시 〈잠꼬대〉를 《자유문학》에서 달란다. 본문 XXXXX를 XXXXX로 하자고 한다."(《김수영전집 2》 504쪽) 《김수영전집》 편집에 참여한 시인의 여동생 김수명씨는 "시 본문의 한자 '金日成萬歲'를 한글 '김일성만세'로 바꿔 발표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고, 전집에 언급할 때도 'XXXXX'라는 복자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시들은 《김수영 전집》을 만든 뒤 김수명씨가 올케인 김현경씨에게 돌려준 원고 속에 포함된 것들이다. 김수명씨는 "오빠는 생전에 이미 자신의 시를 정리해 두고 있었는데, 워낙 옹기장이 같은 성격이라 마음에 차지 않은 시 상당수를 발표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전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수영의 미발표 유고를 찾아낸 김명인 인하대 교수도 《창작과비평》에 게재한 해제에 "(초고 형태의 시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반(半)가공품이거나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불만족스러워 발표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러나 "개별 시의 완성도를 문제 삼기 전에 그의 시 전체를 하나의 이행 과정으로 읽을 때만이 김수영은 자신의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준다"는 말로 이번 공개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에 발굴된 원고에는 시 외에도 김수영 시인이 일기 형태로 쓴 산문 30여 편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