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켤레의 구두를 수집한 필리핀 전(前) 대통령 부인 이멜다, 월세 낼 돈도 없으면서 400불짜리 구두를 사들이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사치와 소비의 상징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1928~1987)의 구두 사랑도 이멜다와 캐리 못지않았다. 그는 열렬한 구두 수집광이자 구두 디자이너였다. 팝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타기 전 구두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은 그는 1950년대에 수십 점의 구두 드로잉을 남겼다. 리도그래피, 콜라주, 실크스크린 같은 기법의 이 그림들 아래에 그는 구두 철학을 적어놓았다. 자주 등장한 문구는 'Beauty is shoe, shoe beauty(아름다움은 구두요, 구두는 아름다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츠(Keats)의 작품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Ode on a Grecian Urn)'의 명구(名句) 'Beauty is truth, truth beauty(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을 패러디한 것이다. 상업주의를 예술로 끌어들인 워홀다운 아이디어다.
동생에게 늘 물감 값을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에게 구두는 앤디 워홀이 생각하는 구두와 달랐다. 그가 1880년대 중·후반에 즐겨 그린 구두 그림에는 굽이 닳고 가죽이 너덜너덜해진 낡고 투박한 갈색 구두들이 등장한다. 예술은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1885년 4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밀레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면서 "'나막신'을 신고
고 살아가겠다는 그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농부들의 음식, 옷, 숙소에 만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 고흐에게 구두는 소박하고 건실한 농부의 삶이었다.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은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에게도 깊은 인상을 줬다.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려 하는 예술작품'의 중요한 예로 들었던 하이데거는 그림의 구두에 대해 "(농부 여인의) 양식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대한 참을성 있는 열망과, 또 한 번의 기근을 견뎌냈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임박한 출산 전의 떨림, 항상 주위를 떠나지 않는 죽음의 위협에 대한 전율이 배어 나온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