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0일 공기업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 14일부터 가동하기로 함에 따라 공기업 민영화를 핵심으로 한 공공부문 개혁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정(黨政) 등 여권의 공공부문 개혁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공기업 노조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야당 등이 국회 특위를 통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는 등 앞길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정권 시절 의회를 해산하는 진통까지 겪으면서 우정(郵政·우체국) 사업 민영화라는,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 과제를 이뤄냈다. 그 주역은 교수 출신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우정민영화 담당장관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다케나카 전 장관을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본지는 청와대에서 공공개혁 업무를 주관하는 박재완(朴宰完) 국정기획수석과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김종석(金鍾奭)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사회로 지난달 26일 본사 3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다케나카 교수는 이날 "공공개혁은 알기 쉽고 명확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했고, 박 수석은 "305개 기관에 대해 우선 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민영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종석=일본은 1990년대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정 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추진했고, 이명박 정부도 현재 공공기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양국이 공공개혁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목적은 무엇인가.
▲다케나카=일본은 공격적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려 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세금 부담이 커지고 경제활력은 떨어졌다. 우정 민영화는 상징성이 있었고, 개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박재완=세계 각국이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한국은 거꾸로 지난 5년간 공기업 수와 종사자가 크게 늘었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낮은 생산성과 불투명성, 효율 저하의 원인 중 하나다. 공공부문 군살을 빼야 경제가 살아난다.
▲김=일본도 '다케나카 때리기'가 유행할 정도로 저항이 컸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다케나카=나도 대학교수를 하다 장관으로 갔는데 일단 TV에 많이 나가서 호소했다. 장관 하는 동안 80여회나 출연했다. 호소하면 할수록 나에 대한 비판은 커졌고, 언론도 호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점점 올라갔다. 찬반 논의가 많이 이뤄지면서 개혁 필요성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박=우리는 교수 출신 (청와대 수석들)의 정무감각이 떨어진다고 해서 1기(청와대)에서 2기로 올 때 대거 탈락했다. 나도 교수 출신이다. 다케나카 전 장관의 정무감각이 탁월한 것 같다.
▲다케나카=한국에는 한국식 정무감각이 있다. 국민이 원하는 건 과거 방식의 정무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적 정무감각이다.
▲김=다케나카 전 장관은 "공공개혁은 볼링의 센터핀(1번 핀)처럼 중요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했었다. 센터핀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한국에선 무엇이 센터핀이라고 보는가.
▲다케나카=센터핀은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센터핀이 쓰러지면 두세 번째 핀도 쓰러져 변화의 기대감이 커진다. 일본은 우정민영화가 이해하기 쉬운 센터핀이었다. 국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택배원은 민간인인데 택배 업무는 공공부문이었다. 민간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상하다는 국민들의 의문이 있었다. 우정 민영화를 하면 미국·유럽 기업이 하던 국제택배업도 할 수 있고, 다른 공공분야도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한국에선 국영기업 민영화가 큰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공기업 특권을 없애고 민영화를 하다 보면 (그로 인해 생기는 재원을) 국민생활에 직결된 부문에 더 사용할 수 있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기대감을 준다. 이것이 안 되면 고령화 사회에서 장기적 비용이 매우 커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강조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적 측면만이 아닌 장래 비전으로 호소해야 한다.
▲김=우리는 300여개 방대한 공기업을 상대로 개혁을 해야 하는데 전선이 너무 넓은 것 아닌가.
▲박=한꺼번에 305개 기관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면 논란만 야기한다. 우선 순위를 정한 뒤 기관별로 시기를 안배하는 게 좋다. 금년에 끝내는 것이 아니고 내년이나 2년 후까지 한다. 순차적으로 계획을 내놓고 쉬운 것부터 추진하면 연착륙할 수 있다. 청와대가 주도하지 않고 각 부처와 해당기관이 계획을 마련토록 하겠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지원하는 돈이 연간 23조원인데 일부만 절감해도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다케나카=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훼방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민영화 법안을 만들 때 많은 고민을 했다. 10년간 민영화 프로그램이 유지되도록 법에 명시했다. 우정민영화위원회 멤버를 모두 민간 출신으로 임명하고 일일이 체크하고 보고토록 했다. 앞으로 3년 뒤 우정민영화 주식을 상장·매각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개혁이 조기에 성공한다. 리더는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자에 맞설 수 있는 자세도 가져야 한다.
▲김=일본은 금융 분야 공공개혁도 했는데.
▲다케나카=일본의 90년대 성장률은 불과 1%였다. 금융부문 부실채권 문제가 컸고,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의 원인이 됐다. 다른 공공 민영화에 앞서 금융 부실채권 정리 등 금융분야 개혁을 먼저 했다. 부실채권 처리가 끝나자 성장률이 2%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금융개혁은 수동적인 것이었지만 앞으로 공격적 개혁이 필요하다. 일본 GDP의 74%가 서비스 분야인데 그 중에서도 금융산업이 발전하지 않으면 성장이 힘들다. 세계 금융도시 순위에서 9위인 도쿄를 5위 이내로 올려야 경제가 발전한다.
▲김=공공개혁에 대해 한나라당에도 반대 기류가 있고, 혁신도시와 관련해 지방이나 노조들도 반대하는데.
▲박= 한쪽(청와대)은 풀을 탁 치면 뱀이 나와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한나라당)은 소리치면 벌이 다 날아가고 오히려 되쏘니까 조용히 잡자는 식의 시각 차이다. 공청회를 열고 실행계획은 해당기관에서 만들도록 하면 지방과 노조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혁신도시와도 최대한 조화를 이뤄 추진하겠다.
▲다케나카=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총리가 나를 끝까지 지지해 줬고, 내가 젊었을 때 대장성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젊을 때 정부에서 일해보면 40, 50대에 정부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언론이 처음엔 협조해 주지 않고 정책 추진 때 굉장히 비판했지만 우정 민영화가 이뤄지고 나자 좋은 평가를 하더라. (우정민영화)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짧은 구호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능력이 있었다. 메시지를 반복하면 언론이 받아들이고 국민에게 전달된다.
다케나카 헤이조 교수는
게이오대(慶應大) 교수로 있던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의해 경제재정장관으로 전격 발탁돼 이후 5년 5개월간 금융장관, 총무장관 등을 잇달아 맡아 일본 정부의 구조개혁을 주도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최대 개혁이라 불렸던 우정 민영화와 공무원 감축, 규제개혁, 부실채권 정리 문제를 성공적으로 처리, 일본의 10년 불황을 끝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참의원(자민당)도 지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 게이오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