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윤복희씨 하면 미니스커트가 생각난대요. 그런데 그 사진에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모습이 찍혔는데, 정말 그렇게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었나요?"(김혜자)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고요…. 새벽 2시에 김포공항에 와서 털코트에 장화 차림으로 비행기에서 직접 짐을 꺼내서 내렸어요."(윤복희) "그럼 순전히 날조한 거네요."(김혜자) "그렇죠. 그리고 그때 시대를 모르시는 분들이 쓰신 걸 거예요."(윤복희)

지난 12일 경인방송(OBS)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에서 윤복희씨가 출연해 진행자인 탤런트 김혜자씨와 나눈 대화. OBS는 방송 이틀 전 "윤복희가 60년대 중반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면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기사는 오보"라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본지를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들이 이를 소개했다. 윤씨는 1967년 1월 귀국 몇 개월 후 패션쇼에서 미니를 입고, 앨범 재킷 사진에서도 미니를 입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미니스커트 1호'라는 상징성이 강했던 윤씨의 '가짜 고발'은 충격적이었고, 이날 네티즌 사이에서는 '가짜 기사'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나 본지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당시 주요 일간지 기사를 확인한 결과, 윤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에 입국했다고 보도한 매체는 없었다. 1967년 1월 12일 5면에 윤씨 귀국 소식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제목은 '봅 호프 쇼 탤런트 윤복희양 세배 귀국'. 윤씨의 얼굴 사진과 경력을 소개했지만 의상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는 경향, 동아, 한국, 중앙일보 또한 마찬가지다.

1996년 제작·방송된 신세계 기업PR CF ‘윤복희’편. 많은 사람들은 이를 1967년 윤복희씨가 미니 스커트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대역을 이용해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윤씨가 미니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는 1996년 광고대행사 웰콤이 신세계 기업PR용으로 만든 CF 장면. 이 동영상은 대역을 써, 윤씨가 실제 귀국할 당시인 것처럼 상황을 구성한 일종의 '가짜 다큐멘터리'였다.

이 광고는 "이 땅에 미니스커트 1호가 나타났을 때, 그녀가 입었던 것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라는 카피로 윤씨의 도전정신을 평가했다. 이후 일부 매체와 책에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는 식의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윤씨의 주장을 소개하는 각종 인터넷 매체와 방송사 기사에는 이 CF의 장면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곁들여졌다.

이 광고의 제작사인 웰콤 이지희 부사장은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의 원조라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드라마를 만든 것이었다"며 "신문 광고는 윤복희씨한테 받은 사진으로 만들었지만 TV 광고는 대역을 이용해 다시 찍었다"고 했다. 그는 또 "모두 윤씨의 동의하에 만들어졌고 약간의 돈도 지불했다"고 덧붙였다.

15일 전화를 통해 윤씨에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항에 내리는 모습을 보도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윤씨는 "원래 신문과 방송을 잘 안 보기 때문에 그런 보도를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윤씨는 또 "광고를 사진 한 장을 빌려주는 정도로만 생각했고 대역을 이용해 동영상 CF까지 찍는 줄 몰랐다"며 "미니스커트 때문에 계란을 맞는 등 비난을 받는 듯한 장면이 나와 항의를 한 적은 있다"고 했다.

광고 한 편의 기억이 결국 '우리나라 미니스커트의 출현 시점'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바꾸었고, 방송사의 성급한 자료 배포가 한국 언론의 또 다른 '오보'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윤복희 미니스커트 기사는 날조였다'는 자극적 기사의 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