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창바이산(長白山)공항이 지난 8월 3일 문을 열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바이산(白山)시에 있는 이 공항은 백두산 서쪽 경관지구에서 15㎞ 지점,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2006년 7월 10일 착공해 당초 지난 8월 1일 개항 예정이었으나 기상악화로 이틀 연기하여 개항했다. 길이 2.6㎞, 폭 45m의 활주로를 갖추고 연간 54만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총 건설비로 950억원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개장과 동시에 지린성의 성도 창춘(長春)에서 백두산으로 직행하는 하늘길이 열렸다. 중국 3대 항공사 중 하나인 남방항공은 창춘과 창바이산공항, 베이징과 창바이산공항을 연결하는 왕복 항공편을 매주 5회 띄울 계획이다.
창춘에서는 40분, 베이징에서는 1시간40분 정도 걸리는 단거리 노선이다. 가격은 편도로 각각 580위안(9만8600원)과 980위안(16만6600원)으로 정해졌다. 조만간 베이징과 상하이에 거점을 둔 중국국제항공, 동방항공도 백두산을 관할하는 지린성 정부와 협의해 창바이산공항과 선양,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전국 대도시 간 항공편을 개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옌지~백두산은 차로 4시간30분… 경쟁력 떨어져
국내 여행사들도 백두산 접근루트 재조정 예상
국내 항공사와 여행사들도 조만간 백두산 관광루트를 재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1주일에 3번 지린성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옌지(延吉) 차오양촨(朝陽川)공항으로 직항편을 띄우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노선 개설) 계획이 없지만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개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롯데관광에서 백두산 여행상품설계를 담당하는 정종훈씨는 “올해까지는 미리 설계해둔 여행상품을 팔고 내년부터는 창바이산공항을 이용해서 관광객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관계자도 “창바이산공항을 취항하는 남방항공에서 외국인 상대로 좌석을 오픈하면 여행상품 설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백두산 하늘길의 확대로 인해 직접 타격을 받는 것은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다. 중국 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옌볜 자치주는 그동안 한국인 관광객 대상 백두산 관광길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국 관광객의 90%가량이 자치주도인 옌지를 거쳐 백두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백두산 관광코스는 대개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과 지린성의 옌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 코스는 동북지방 관문도시인 선양에서 옌지행 비행기로 갈아탄 후 옌지에서 차량을 타고 백두산으로 들어가는 코스이고, 두 번째는 인천~옌지 직항 코스를 이용한 후 역시 차량으로 백두산으로 가는 코스다. 두 노선 모두 조선족 자치주도인 옌지를 백두산 관광의 기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현재 인천에서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옌지 직항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주 3회 취항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 열린 백두산 하늘길에 비해 옌지를 이용한 백두산 육로 관광코스가 편리함에서 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옌지에서 백두산의 관광로가 시작되는 북파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4시간30분이나 소요된다. 반면 새로 개항한 창바이산공항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30분이면 간다. 무려 4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옌볜 조선족자치주로서는 지난 2005년 8월 백두산 관할권을 지린성 산하에 있는 ‘창바이산 보호개발관리위원회’에 회수 당한 이후 두 번째 위기인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남북관광사업단 정갑진씨는 “연간 백두산을 여행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10만~15만 정도”라며 “백두산에서 가까운 창바이산공항이 개장될 경우 옌지를 거치지 않고 선양 등 대도시에서 창바이산공항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관광수입은 직접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조선족 자치주의 관광지는 주도인 옌지를 비롯해 주변도시인 룽징(龍井)과 투먼(圖門) 등이다. 룽징은 윤동주 시인이 다닌 용정제일중학교(구 대성중학교)와 일송정·해란강 등이 있고, 투먼은 북한의 남양시를 마주한 접경도시로 주민의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다. 중국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곳이다.
남한의 절반 정도 크기인 4만3500㎢ 면적의 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자치주 전체 인구(220만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80만명 정도. 상당수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이나 민박, 북한 농산물 판매, 식당, 노래방, 발마사지, 여행가이드 등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무려 GDP의 11.8%를 여행업에 의존한다. 중국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상하이의 여행업 비중(6.8%)보다 훨씬 높다.
삼지연공항은 ‘그림의 떡’… 당 간부들만 이용
남한이 지원해준 보수공사 자금도 무단 전용한 듯
창바이산공항의 등장으로 북한도 일단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북한은 창바이산공항이 등장하기 전까지 백두산과 가장 가깝다는 삼지연공항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북한 행정구역상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는 삼지연공항은 해발 1400m에 위치해 있다. 북측과 현대아산·한국관광공사가 맺은 협약에 따라 향후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면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김포공항에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하면 이곳까지 1시간30분이면 간다. 삼지연에서 백두산 입구까지 차량으로 1시간여 거리다. 한국교통연구원 안병민 북한교통정보센터장은 “현재 삼지연공항은 북한 내 외국인 관광객이나 당 고위급 간부들이 이용하고 있다”며 “평양 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까지 하루에 한 번 정도 부정기 항공편을 띄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항 상태가 좋지 않다. 안 센터장은 “본래 지형 조건과 기상 상태 자체가 좋지 않다”며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통신장비와 관제탑 같은 항행안전장비들이 아주 미흡한 상태”라고 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한 상태로 보수하려면 280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활주로 개선, 항행안전시설 확충, 접속도로 개선 등이 필요하다. 북측은 우리로부터 2005년과 2006년 남북협력기금에서 각각 50억원과 43억원을 지원받아 2005년 7월부터 삼지연공항 활주로와 접속도로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보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8월 25일 감사원은 “북한 삼지연공항에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된 93억원의 공사용 자재가 낭비되거나 다른 곳으로 전용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단 전용된 아스팔트 피치와 부자재는 20억원가량으로, 평양 순안공항 보수에 사용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순안공항은 평양 시내에서 22㎞ 떨어진 북한의 대표 공항으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용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애초 삼지연공항을 통해 국내 관광객을 백두산으로 실어 나르려던 현대아산과 관광공사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아산의 관계자는 “작년 정부 합동조사단이 삼지연공항을 한 번 다녀온 이후로는 전혀 진척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창춘~백두산 3시간” 4차선 고속도로 건설 한창
베이징까지 철도 계획… 동계올림픽 유치도 추진
중국은 하늘길뿐만 아니라 백두산으로 향하는 육로 정비에도 나섰다. 2007년 10월에는 지린성 창춘에서 백두산까지 연결되는 295㎞의 잉청즈(營城子)~쑹장허(松江河)고속도로도 착공했다. 2011년 개통 예정인 이 왕복 4차선 고속도로 건설에 총 사업비 1조7800억원이 투입된다. 완공되면 육로를 통해서도 지린성 창춘에서 백두산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수도 베이징에서 백두산으로 자국 관광객을 실어 나를 철도도 준비 중이다. 13억 중국인이 백두산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백두산에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6년에는 백두산에 한국인 10만명을 포함해 7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백두산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 해 전보다 24% 증가한 수치다. 백두산 관광으로 중국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12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과 창바이산(長白山) |
백두산을 국가 ‘AAAAA급’ 관광 명소로 지정
1962년 北과 경계조약, 천지의 45.5% 중국 측 편입
창바이산은 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르는 이름이다. 2007년 5월 8일 중국 국가여유국(우리나라 관광공사에 해당)은 백두산을 국가 AAAAA급 관광명소로 지정했다. 창바이산이란 이름이 굳어진 것은 북방 소수민족인 거란족과 여진족이 중원을 진출한 이후부터다. 여진족이 세운 정권인 금나라 역사서 ‘금사(金史)’ 본기는 “여진의 땅은 창바이산에 있다”고 기록한다.
여진족은 백두산을 그들의 발상지로 여겼다. 이후 여진족은 만주족이라 개칭하고 청(淸)나라를 세운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백두산을 더욱 신성시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 백두산 주변에 버드나무로 경계를 세우고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 사냥이나 방목을 하거나 인삼을 캐는 것을 막았다. 강희제, 건륭제와 같은 만주족 황제들은 직접 동북지방에 와서 백두산에 예를 올렸다. 1983년에는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백두산을 찾아와 “사람이 태어나서 창바이산에 오르지 않으면, 실로 크게 한스러운 일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때는 한국과 중국 간에 백두산 영유권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경기에서 중국에 1위를 내주고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것.
이에 중국 정부는 “아시안게임 정신에 반하는 일”이라며 강하게 항의했고, 중국 외교부는 “한·중 간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백두산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논의할 사안은 없다는 뜻이다. 다만 중국은 북한과는 1962년 비밀리에 백두산 일대 경계조약인 조ㆍ중(朝中) 변계(邊界)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백두산 천지를 북한과 중국이 각각 54.5% 및 45.5%로 분할하게 됐다.
이 조약에 따라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해발 2744m)은 북한 영토에 편입되었다. 조약의 내용은 지난 1999년에야 비로소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남북통일 후 이 조약의 유효성을 놓고 통일 한국과 중국 간에 외교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