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도시 경북 포항이 환경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운하사업'에 뛰어 들었다. 시커멓게 썩은 물이 고여있는 항구를 뚫어 맑은 물이 흐르는 물길로 만들고, 그 위에 유람선도 띄워 죽어가는 구(舊) 도심을 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포항시 동빈내항복원팀 김현구(43) 공사담당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포항이 철강에만 의존해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운하사업은 포항이 환경을 이용해 먹고 살 길을 모색하는 첫 번째 환경프로젝트인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해도동과 북구 죽도동에 걸쳐 형성된 동빈내항. 주민들이 항(港) 북쪽으로 열려있는 영일만으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위해 타는 어선과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정박하는 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2.2㎞ 길이의 항은 흐름이 멈춰버린 오수(汚水)로 가득 차 있어, 까만 천을 길게 펼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근처 죽도어시장의 생선비린내와 항구에서 나오는 악취가 코를 괴롭혔다.

포항 동빈내항. 사진 속 다리(동빈큰다리) 너머 형산강까지 1.3㎞ 구간에서 지난 40 년간 막혀있던 물길을 뚫는 공사가 2010년까지 진행된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4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영일만~동빈내항~형산강으로 이어지는 3.5㎞ 물길을 따라 숭어와 망둥이가 돌아다니고 시민들이 멱도 감던 곳이었다. 하지만 포스코(POSCO)가 들어서면서 형산강 지류(支流)가 흐르던 동빈내항에서 형산강에 이르는 1.3㎞ 구간 물길이 변하기 시작했고, 주변 도심이 개발되면서 아예 막혀버리게 됐다. 시는 "나머지 구간(영일만~동빈내항)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이곳이 서서히 오염됐다"며 "자연과 환경을 내주고 경제를 얻은 포항의 어두운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 했다.

포항시는 이처럼 죽어버린 물길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 처음으로 도심을 관통해 강과 바다를 잇는 운하를 만들 계획이다. 2010년까지 1170억원을 들여 남구 송도동 송도교에서 해도동 형산강에 이르는 1.3㎞ 구간을 뚫기로 했다. 지상에 들어선 아파트와 상가 등을 싹 밀고 땅을 파 평균 폭 20m, 깊이 2m(수심 1.5m)의 운하를 만들어 수십년 전 잃어버린 물길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작년 사업효과 분석을 담당한 한양대 수질효과분석팀은 "운하가 만들어지면 동빈내항으로 형산강 물이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와 수질이 크게 개선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현재 COD(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 3.7∼5.4PPM인 동빈내항 수질이 이 사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지금의 형산강(2.5PPM·3급수) 수준으로 좋아지는 효과도 낳는다는 것이다.

시는 또 운하를 통해 주변 송도·해도동을 부활시킨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 두 곳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죽도시장 주변 오거리와 육거리를 잇는 시가지와 함께 포항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점차 슬럼화되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해져 버렸다. 우선 물길이 만들어지는 주변 9만6000㎡(2만9000여평) 일대에 산책로와, 쉼터, 광장 등이 갖춰진 수변공원을 만들고 수상카페·호텔 등도 유치한다. 물길 위를 오가는 20∼30인승 정도의 유람선도 띄울 계획이다. 시는 "현재 포항은 도심 외곽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중심지는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되살아난 물길과 이를 이용한 관광사업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면 포항의 균형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빈내항 수질 개선을 위해 물길을 터는 것은 찬성이나 이곳에 유람선을 운행하는 것처럼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주변 도심 활성화에 큰 영향이 없으며 또 다시 환경을 망치는 일"(포항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재형 사무국장)이라는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시·도비와 포스코의 지역발전지원기금, 대한주택공사의 참여 등으로 모두 확보됐으며 사업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도 끝낸 상태다. 오는 11월엔 주민보상에 들어가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빈내항 주변의 낡은 철제펜스와 어민들이 창고로 이용하는 컨테이너 등을 걷어내는 작업도 병행한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끊어진 형산강 물길을 되살리는 것은 포항 시민의 숙원사업"이라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친환경도시로 변신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