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의‘서울문화예술탐방’프로그램 시민명예스태프인 황영욱(왼쪽)씨와 전복린(오른쪽)씨가 부암동 환기미술관 뜰에서 재단 직원 정겨운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지섭 기자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성곽 자락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고요한 분위기를 깨고 40여명의 여성들이 들어서자 미술관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시민들을 버스에 태우고 서울의 문화 명소들을 찾아가 전문가들의 현장 강의를 듣는 서울문화재단(대표 안호상)의 '서울문화예술탐방' 프로그램 올해 마지막 일정. 이날 참가자들은 미술관 앞뜰에 모여 큐레이터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전시회 '푸른 빛의 떨림'을 보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작품 감상에 몰두하는 여성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부지런히 수첩에 메모하는 한편, 일행들에 뒤처지지 않도록 안내하는 여성, 그리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번갈아 들며 참가자들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내던 남성. 이들은 '시민명예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전복린(여·59)씨와 황영욱(65)씨다.

두 사람은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여러 번 참여하다 아예 진행요원으로 나서 각종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시민명예스태프'는 말하자면 은퇴한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 도우미'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부쩍 높아진 고령층의 욕구와 수준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부터 시작돼 현재 3명이 활동하고 있다.

황영욱씨는 문화방송에서 30여 년간 일하다 은퇴한 기자 출신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는 것을 평생 업으로 삼았던 그는 방송국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살렸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 직접 편집한 UCC 동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도맡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사업부서에 있을 때 'MBC 가곡의 밤'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문화에 눈을 뜨게 됐고, 은퇴 뒤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문화프로그램들을 두루 섭렵했다"며 "머릿속을 교양으로 꽉 채우니 자연스럽게 함께 나누고픈 욕구가 생기더라"고 말했다. "은퇴(retire)가 무슨 뜻입니까? 타이어(tire)를 다시(re) 갈아 끼운다는 얘기예요. 60·70대는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 지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뒤 일생 대부분을 전업주부로 산 전복린씨에게 시민명예스태프 활동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전씨가 맡은 일은 '인솔 교사 겸 취재기자'다. 신청자가 다 왔는지, 도중에 '새는 건' 아닌지 체크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질서를 유지한다. 강의 내용과 현장 답사한 것을 틈틈이 수첩에 적어놓았다가 기사로 만든다. 전씨는 "학창시절부터 답사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했는데, 사랑했던 일로 여가를 보낼 수 있어서 참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명예스태프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건 저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참가 시민들이 만족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지요."

문화재단 프로그램 담당자 정겨운씨는 "친부모 같은 꼼꼼함 덕에 흐트러지기 쉬운 답사 분위기가 깔끔하게 유지돼왔다"며 "가장 고무적인 일은 직접 답사객으로 참여했던 분들이 매력을 느끼고 스스로 도우미 일에 나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단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어르신 명예스태프를 더 많이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