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설날을 전후한 연휴 극장가 라인업이 심상치 않다. 명절 특수를 노린 한국영화 개봉작이 1편뿐이다. 풍요로운 설날, 이렇게 조촐한 극장 메뉴는 전례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는지 의구심마저 이는 상황이다.
‘두사부 일체’류 코믹물 ‘유감스러운 도시'가 유일한 설 연휴 한국영화 기대작이다. 나머지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작전명 발키리’, ‘체인질링’, ‘베드타임 스토리’ 등 외화 일색이다. 이월작 ‘과속스캔들’과 1월 초 개봉한 ‘쌍화점’도 설 연휴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에 걸리기만 해도 관객으로 들끓는 흥행 황금기가 설연휴다. 한국영화 관객 수요는 특히 높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최근 5년간 설연휴 한국영화 점유율은 평균 77.58%, 압도적 우위다. 2008년 86.76, 2007년 80.15, 2006년 80.42, 2005년 70.13, 2004년 70.43%다.
지난해 설 명절 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6년째 열애중’, ‘마지막 선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라듸오 데이즈’ 등 한국영화 다섯 편이 쏟아졌다. 당시 외화 개봉작들은 명절 특수의 떡고물 정도만 얻어 갔다.
그런데 올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외화가 한국영화를 앞지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톰 크루즈 ‘작전명 발키리’, 앤절리나 졸리 ‘체인질링’, 무협 대작 ‘적벽대전2’, 여자판 해리포터로 광고 중인 ‘베드타임 스토리’에 맞서는 한국영화는 명절용 코믹물 ‘유감스러운 도시’ 딱 하나다. 고래같은 외화들 사이에 끼인 새우 꼴이다. 신작 가뭄 속에서 ‘과속 스캔들’과 ‘쌍화점’이 생명연장의 꿈을 부풀리는 중이다.
CGV 홍보팀은 “올해 설에는 외국영화가 성수기 덕을 보게 됐다. 한국영화 개봉작이 한 편이란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외국영화가 점유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지금 상황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영화들은 설연휴를 왜 그냥 지나쳤는가. ‘눈치 작전을 벌이다 한국영화들이 2월로 몰렸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작전’, ‘마린보이’, ‘핸드폰’, ‘키친’ 등 한국영화들은 2월로 몰려 있다. 명절 특수를 피하려다 다음달로 넘어갔다는 풀이다. 한국영화가 일제히 개봉하면서 관객이 분산된 지난해 흥행판도를 역으로 벤치마킹한 셈이다.
올해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30~40편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설 연휴에 나오는 ‘달랑 이것’ 분위기가 비극적인 이유다. 설 연휴 국산영화 기근은 1년 365일 위기론이 떠도는 한국영화계에 또 다른 미끼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