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의 외교안보 국정과제의 최우선 목표로 '핵무기 없는 세계(nuclear- free world)'를 제시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오바마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밝힌 공약과 당선 후에 공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핵무기를 궁극적으로 전면 폐기하는 '제로의 논리(logic of zero)'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핵 문제 최우선 관심
오바마 당선자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발언 기회에서 늘 가장 먼저 핵 문제를 언급해 왔다. 그는 "미국의 안전을 위해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핵 확산을 제어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4년간의 재임 기간 중에 전 세계의 위험지역에 산재(散在)한 핵 물질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오바마 당선자가 핵 문제에 대해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 진보진영의 핵 감축 주장과, 테러리스트의 미국 핵 공격설(說)로 불안해 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또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antiballistic missile) 제한협정 폐기, 인도에 예외적인 핵개발 용인 등으로 신뢰가 약화된 미국의 위상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오바마 당선자는 개인적으로는 4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상원의원 임기 중에, '넌-루가 법'으로 유명한 리처드 루가(Lugar·공화) 상원의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외국의 핵무기 해체를 돕기 위해 미국이 관련 비용과 기술을 제공하는 '넌-루가 법'의 적용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루가 의원과 함께 2005년 8월 시베리아의 페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해체되는 작업을 직접 지켜봤고, 당시 그와 루가 의원이 탄 비행기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원들에 의해 3시간 동안 억류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루가 의원과 함께 핵무기확산방지법안을 제출했으며 한때 그를 국방장관 후보로 고려했었다.
◆핵 연료은행 추진
오바마 당선자의 핵 문제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오바마는 전 세계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핵 연료은행(Fuel Bank)'의 창설을 주장한다. 2007년 8월 척 헤이글(Hagel·공화) 당시 상원의원 등과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추진하는 '핵 연료은행' 창설을 지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이를 선거 공약에서 구체화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이 법안에서 세계에 약 60t의 농축우라늄이 있는데 이를 통해 1000개의 핵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핵 연료 은행' 설립을 위해 미국이 5000만달러를 자발적으로 기부할 것을 명시했다. 핵 연료은행 창설을 통해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핵 개발을 추진하는 나라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 오바마 당선자의 판단이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의 핵 무기 감축 협상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 공약에서 러시아와 함께 핵 무기를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작성한 '피닉스 이니셔티브(Phoenix Initiative)'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러시아의 협력을 전제로 미국의 핵무기를 1000개 수준으로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수전 라이스(Rice) 유엔대사 내정자가 서문을 쓰고 제임스 스타인버그(Steinberg)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와 앤-마리 슬로터(Slaughter)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내정자 등이 필자로 참여해, 앞으로 구체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오바마 행정부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이보 달더(Daalder)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포린어페어즈 작년 11·12월호에서 "미국은 1000개 정도의 핵무기만 가지면 유사시 충분한 핵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당선자는 또 부시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강화, 199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핵무기 제어를 위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핵 연료은행
(fuel bank)
핵탄두의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농축 우라늄 개발계획을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다국적 핵 연료은행(저장소)을 만들어 필요한 나라에 핵 에너지를 공급하자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아이디어. 원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안한 것으로 핵 연료은행을 설치하게 되면, 민군(民軍) 양용의 핵에너지 시설들을 구축하려는 각국의 시도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핵 연료은행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면 원자력 이용기술이 발달해 있는 한국을 비롯, 전 세계의 모든 나라의 핵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